이토엔의 야심, 보리차는 더는 차가 아니다

이토엔의 야심, 보리차는 더는 차가 아니다

FBK Tokyo Desk
작성일: 2025년 7월 24일
수정일: 2025년 7월 24일

일본의 음료 대기업 이토엔(伊藤園)이 대표 상품인 ‘건강 미네랄 보리차’에 미국 프로야구(MLB) 30개 구단의 로고를 새겨 넣었다. 표면적으로는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스포츠 마케팅이지만, 그 이면에는 ‘차(茶)’라는 기존의 카테고리를 넘어 이온음료가 장악한 ‘수분 보충’ 시장의 판도를 바꾸려는 치밀한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다. 이는 단순한 신제품 출시를 넘어, 익숙한 제품의 본질을 재정의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교과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토엔(伊藤園) 인스타그램

카테고리의 경계를 허무는 ‘의미의 재설계’

이토엔의 이번 협업은 무설탕 차 음료 업계에서는 최초로 MLB 모든 구단과 손을 잡은 파격적인 행보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명확하다. 바로 ‘보리차는 집에서 마시는 차’라는 전통적 인식을 깨고, ‘운동 후 갈증 해소에 가장 적합한 음료’라는 새로운 의미를 소비자 뇌리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토엔(伊藤園) 인스타그램

이토엔 마케팅 본부의 구로오카 마사야스 브랜드 매니저는 “스포츠 현장에서 친숙했던 보리차를 MLB라는 세계적인 맥락과 연결해 신선한 음료로 제안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는 보리차의 본질적 가치, 즉 미네랄이 함유되어 수분 보충에 효과적이라는 기능성에 ‘스포츠’라는 구체적인 상황을 덧입혀 제품의 정체성을 확장하려는 의도다. 실제로 이토엔의 데이터에 따르면 보리차는 기온이 35도를 넘어서는 폭염에 매출이 3배까지 급증하는데, 이는 소비자들이 이미 무의식적으로 보리차를 갈증 해소 음료로 사용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토엔은 이 잠재된 인식을 MLB와의 협업을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보는 재미’로 매대를 장악하다

이번 ‘MLB 30개 구단 스페셜 에디션’은 단순한 로고 삽입을 넘어섰다. 일본의 국민 배우인 쇼후쿠테이 쓰루베가 각 구단의 유니폼을 입고 투구, 타격 등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일러스트를 병기했다. 이는 마치 한국의 ‘포켓몬빵’처럼 소비자들의 수집욕을 자극해 반복 구매를 유도하고, 전용 진열대를 통해 편의점이나 마트의 매대를 압도하는 시각적 효과를 창출한다.

지난 7월 4일 열린 발표회에는 전직 MLB 선수인 이가라시 료타, 가와사키 무네노리까지 등장시켜 스포츠 마케팅의 진정성을 더했다. 이는 소비자에게 ‘이토엔 보리차는 진짜 스포츠와 관련이 깊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장치다. 아메리칸리그 13개 구단은 일반 보리차에, 내셔널리그 13개 구단은 검은콩 보리차에 적용하는 등 제품 라인업별로 디자인을 세분화하여 전체 포트폴리오의 판매를 견인하는 영리함도 보였다.

한국 자영업 시장에 던지는 시사점

이토엔의 사례는 거대 자본을 가진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핵심은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의 카테고리를 스스로 한정하지 않는 유연한 사고’에 있다.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이 사례를 통해 자신의 비즈니스를 재점검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네 빵집이라면 단순히 ‘빵을 파는 곳’이 아니라, ‘등산객을 위한 건강한 에너지 보충 스테이션’으로 가게를 재정의할 수 있다. 인근 등산로와 연계하여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산행 전후 필수 탄수화물’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식이다. 작은 카페라면 ‘오피스 직장인을 위한 오후 집중력 부스터’라는 콘셉트로 인근 사무실과 제휴를 맺을 수도 있다. 이토엔이 MLB와 협업한 것처럼, 한국의 현실에 맞춰 KBO 프로야구나 K리그 구단과 연계한 지역 기반의 마케팅도 충분히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협업의 대상이 누구냐가 아니라, 기존의 익숙한 상품에 어떤 새로운 ‘의미’와 ‘상황’을 연결해 고객의 인식을 바꾸느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