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어 파는 돈카츠집', 불황 넘는 역발상 메뉴 전략
만약 당신이 즐겨 찾던 단골 돈카츠 전문점에서 느닷없이 ‘장어 덮밥’을 여름 한정 메뉴로 내놓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엉뚱한 조합이라며 고개를 젓거나, 혹은 호기심에 한 번쯤 주문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일본의 외식 시장에서는 바로 이 ‘엉뚱한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돈카츠, 가라아게(일본식 닭튀김), 심지어 햄버거 전문점까지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장어’를 외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여름철 보양식을 챙기는 일본의 식문화를 넘어, 치열한 경쟁과 불황을 이겨내기 위한 고도로 계산된 비즈니스 전략에 가깝다. 그 영리한 속내를 심층 분석했다.
‘복날’ 특수를 노린 계절 장사
일본에는 한국의 복날과 유사한 ‘도요노우시노히(土用の丑の日)’가 있다. 여름 중 가장 더운 이 시기에 장어를 먹으며 더위를 이겨내는 것은 에도 시대부터 이어진 오랜 전통이다. 당연히 외식 업체들은 이 거대한 시즌 특수를 놓칠 리 없다. 올해 역시 2025년 7월 19일과 31일, 두 번의 ‘도요노우시노히’를 앞두고 대대적인 장어 메뉴 출시가 이어졌다. 이는 가장 명확하고 직접적인 이유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짜 핵심은 그다음이다.
‘객단가’를 끌어올리는 영리한 한 수
왜 하필 ‘돈카츠’와 ‘가라아게’ 전문점일까? 답은 ‘객단가(고객 1인당 평균 지출액)’ 상승에 있다. 장어는 돈카츠의 재료인 돼지고기나 가라아게의 닭고기보다 월등히 비싼 고급 식재료다. 기존 주력 메뉴가 1만 원 내외라면, 장어를 곁들인 메뉴는 1만 5천 원 이상의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첫째, 기존 고객의 객단가를 자연스럽게 높인다. 둘째, ‘장어를 먹겠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신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 평소 돈카츠나 가라아게에 관심 없던 소비자라도, ‘도요노우시노히’ 시즌에는 장어 메뉴를 찾아 해당 매장을 방문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장어 메뉴는 기존 사업 모델의 수익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매출을 창출하는 강력한 ‘킬러 콘텐츠’ 역할을 수행한다.
사례 1: 돈카츠와 장어의 만남, 카츠야의 ‘반반 덮밥’ 전략

일본의 대표적인 돈카츠 체인 ‘카츠야(かつや)’는 마치 한국의 ‘짬짜면’이나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처럼, 자사의 주력 메뉴인 로스카츠와 장어구이를 한 그릇에 담은 ‘장어구이와 로스카츠 합석 덮밥’을 선보였다. 이는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고객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은 전략이다. 고객은 익숙한 돈카츠의 맛을 즐기면서 동시에 여름 특선 메뉴인 장어까지 맛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카츠야는 약 4주간 숙성한 북미산 냉장 돼지고기와 자체 개발한 습식 빵가루를 고집하며 쌓아온 ‘돈카츠 전문점’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장어를 통해 성공적으로 객단가 상승과 신규 고객 유입을 이뤄냈다.
사례 2: 치킨과 장어의 이색 조합, 카라야마의 과감한 도전

가라아게 전문점 ‘카라야마(からやま)’의 선택은 더욱 과감하다. 밥 위에 계란 지단과 장어구이, 그리고 자사의 대표 메뉴인 ‘카릿토모모(바삭한 닭다리살)’ 가라아게를 올린 ‘우나기 카라타마동(장어 가라아게 계란 덮밥)’을 출시했다. 마늘과 생강을 쓰지 않은 비법 간장 소스로 맛을 낸 가라아게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장어와의 이색적인 조합을 시도한 것이다. 이는 ‘가라아게 전문점’이라는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시즌 메뉴를 결합한 전형적인 확장 전략이다.
사례 3: 장어덮밥, 햄버거가 되다, 롯데리아의 파괴적 혁신

가장 파격적인 사례는 햄버거 체인 ‘롯데리아(ロッテリア)’의 ‘우나돈 버거(장어덮밥 버거)’다. 햄버거 번 사이에 밥으로 만든 패티와 장어구이, 계란 지단을 넣은 이 메뉴는 ‘장어덮밥’이라는 메뉴 자체를 해체하고 햄버거의 문법으로 재조립한 결과물이다. 간장을 발라 구워낸 밥 패티, 세 번에 걸쳐 소스를 발라 구운 장어 등 디테일에도 공을 들였다. 이는 단순히 장어를 추가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혁신성을 과시하고 높은 화제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분석된다.
한국 자영업 시장에 던지는 시사점
일본 외식 브랜드들의 ‘장어 대전’은 한국의 자영업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 그것은 바로 ‘맹목적인 유행 추종’이 아닌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확장’의 중요성이다.
많은 식당이 여름이면 묻지마 식으로 ‘냉면 개시’를 써 붙이지만, 고깃집이 아닌 곳에서 파는 냉면이 과연 얼마나 큰 경쟁력을 가질까?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제시한다. 핵심 공식은 ‘나의 주력 무기 X 시즌 특수 = 고부가가치 신메뉴’다.
예를 들어, 훌륭한 삼겹살을 파는 고깃집이라면 평범한 냉면 대신, 질 좋은 한우 차돌박이를 듬뿍 올린 ‘프리미엄 차돌 냉면’을 여름 한정으로 개발해 객단가를 높일 수 있다. 퀄리티 높은 원두를 자랑하는 카페라면, 흔한 팥빙수 대신 시그니처 에스프레소를 활용한 ‘아포가토 빙수’를 만들어 차별점을 확보하는 식이다.
결국 일본 돈카츠집의 장어 메뉴는 단순히 더위를 이기기 위한 보양식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시장의 변화에 영리하게 대응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찾아낸 빛나는 해법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