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맥주, 과연 팔릴까?

AI가 만든 맥주, 과연 팔릴까?

작성일: 2025년 7월 12일
수정일: 2025년 7월 12일

인공지능(AI)이 만든 맥주, 과연 마실 만할까? 챗GPT에게 레시피를 물어 맥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흔한 마케팅 소재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현상을 단순한 유행이나 기술적 과시로 치부한다면, 우리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놓치게 될지 모른다. 필리핀의 작은 수제 맥주 양조장에서부터 하이네켄 같은 글로벌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맥주 업계는 지금 AI를 단순한 ‘레시피 생성기’가 아닌, 비즈니스의 핵심을 바꾸는 ‘전략적 파트너’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움직임은 한국의 수많은 자영업자와 경영자들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AI는 과연 우리의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출처:freepik의ArtPhoto_studio

AI, 인간 브루마스터를 대체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오’에 가깝다. 오히려 AI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을 보완하며 최고의 ‘조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23년, 필리핀 마닐라의 ‘엘리아스 위키드 에일(Elias Wicked Ales & Spirits)’은 챗봇에게 안개처럼 뿌연 스타일의 페일 에일 맥주 레시피를 의뢰했다. ‘포기 데이즈(Foggy Daze)’라 이름 붙은 이 맥주는 큰 화제를 모았지만, 공동 창업자 라울 마상카이(Raoul Masangcay)는 “맥주 자체는 평범했다”고 솔직히 인정한다.

진짜 혁신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벨기에의 루벤 가톨릭 대학교(KU Leuven) 연구가 그 단적인 예다. 케빈 페르스트레펀(Kevin Verstrepen) 교수는 500종이 넘는 벨기에 맥주의 화학적 성분과 18만 건의 온라인 소비자 리뷰를 머신러닝 모델에 학습시켰다. 그 결과, AI는 이제 맥주의 성분표만 보고도 어떤 맛이 날지, 소비자들이 이 맛을 좋아할지를 예측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AI가 단순히 레시피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공 확률이 높은 결과’를 예측하고 제안하는 단계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출처:freepik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의 무기, 데이터

AI의 이런 능력은 거대 기업뿐만 아니라, 오히려 변화에 민첩한 소규모 양조장에게 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호주 남부의 ‘바로사 밸리 브루잉(Barossa Valley Brewing)’ 창업자 덴함 디실바(Denham D’Silva)는 AI의 진정한 힘이 “소셜 미디어에 쏟아지는 고객의 피드백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통찰력을 추출하는 능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한국의 자영업 현실에 대입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마치 네이버 플레이스 리뷰나 배달의민족 후기 수만 건을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고객들이 가장 원하는 신메뉴의 맛과 특징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제안하는 것과 같다. 인간 경영자가 수많은 변수를 직관에 의존해 결정해야 했던 것과 달리,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한다.

실제로 일본의 ‘코에도 브루어리(Coedo Brewery)’는 IT 기업 NEC와 협력해 20대부터 50대까지, 각 세대가 선호하는 특징을 AI로 분석하여 4종의 맞춤형 맥주를 개발했다. 하이네켄 역시 싱가포르에 글로벌 생성형 AI 연구소를 열고 특정 인구 집단이 특정 맥주에 대해 어떻게 느낄지를 분석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들은 더 이상 ‘최고의 맥주’가 아닌, ‘특정 고객을 위한 최적의 맥주’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출처:freepik의Bogac Dalkiran

결국 답은 ‘인간’과 ‘기술’의 협업에 있다

물론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미국 뉴저지의 ‘애즈버리 파크 브루어리(Asbury Park Brewery)’는 AI가 제안한 레시피로 ‘AI-IPA’를 만들었지만, 공동 창업자 밥 맥클린(Bob McLynn)은 “AI의 제안은 놀라웠지만, 과정은 언제나 협업이었다”고 말한다. 실제 재료의 미묘한 차이를 조율하고 최종 맛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인간 브루마스터의 섬세한 감각과 경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역할을 ‘단순 기술자’에서 ‘데이터 기반의 전략적 의사결정자’로 격상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asbury park brewery의 AI-IPA(출처:홈페이지)

한국 시장에 던지는 시사점

해외 맥주 양조장들의 이야기는 비단 ‘맥주’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곧 한국의 모든 자영업, 그리고 기업 경영자들이 마주할 미래의 축소판이다.

첫째, 고객의 목소리를 데이터로 전환해야 한다. 온라인 리뷰, 소셜미디어 언급, 판매 데이터 속에 숨겨진 고객의 욕구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둘째, AI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가장 유능한 파트너로 활용해야 한다. AI에게 메뉴 개발을 맡기고, 경영자는 고객 서비스와 최종 품질 관리에 집중하는 식의 역할 분담은 비즈니스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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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창의성을 보완하는 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페르스트레펀 교수가 지적했듯, 맥주 업계는 전통을 중시하는 이미지와 달리 역사적으로 항상 최신 과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왔다. AI라는 최신 기술을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 도태를 자초하는 일일 수 있다.

결국 미래의 승자는 가장 뛰어난 장인이나 가장 거대한 자본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과 AI의 분석력을 가장 잘 결합하는 경영자가 될 것이다. 오늘 저녁, 당신이 마시는 맥주 한 잔에 이미 그 미래가 담겨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