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은 세 곳인데 80개국 호텔이 이 차를 쓴다

매장은 세 곳인데 80개국 호텔이 이 차를 쓴다

작성일: 2026년 9월 19일
수정일: 2026년 9월 19일

독일 차 브랜드 로네펠트는 매장 세 곳으로 80개국 호텔에 차를 납품한다. 1984년 소매 진열대를 버리고 호텔만 파고든 선택과 직원이 차를 몰라도 되게 만든 제품 설계를 한국 F&B 사장의 채널 전략으로 옮긴다.

이름은 못 외워도 그 차는 이미 마셔봤다

리츠칼튼이나 힐튼, 하얏트에 묵어본 적이 있다면 이 브랜드의 차를 마셨을 확률이 높다. 조식대 한쪽의 티백 상자, 로비 라운지의 찻주전자, 객실 미니바 서랍. 그 자리마다 이 회사 제품이 놓여 있다.

출처: Ronnefeldt

이름은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독일 차 브랜드 로네펠트는 수십 년간 매장을 거의 열지 않았고 광고도 하지 않았다. 지금 소비자가 직접 드나드는 공간은 프랑크푸르트와 방콕, 이스탄불에 하나씩 있는 세 곳뿐이다.

직원은 140명 안팎이고 차는 350종이다. 파는 나라는 80개국이며 연매출은 2,000만 유로(약 340억 원)를 넘는다. 숫자 자체는 놀랍지 않다. 놀라운 건 이 매출이 거의 전부 한 곳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4성급과 5성급 호텔. 독일에는 이런 회사를 부르는 말이 따로 있다. 이름은 아무도 모르는데 좁은 판에서는 세계 1위인 기업. 숨은 챔피언이다.

로네펠트는 182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문을 열어 2023년에 창립 200주년을 넘겼다. 지금의 모습이 된 건 200년 내내가 아니라 딱 한 번의 결정 때문이다.

1984년에 진열대를 버렸다

그전까지 로네펠트는 독일의 다른 오래된 차 상인들과 다를 게 없었다. 소매도 하고 도매도 하고 슈퍼마켓 진열대에도 올라갔다. 문제는 그 진열대에 이미 강자가 둘 있었다는 점이다. 테카네와 메스머. 두 회사가 독일 차 시장의 상당 부분을 나눠 갖고 있었다. 캐모마일이든 페퍼민트든 독일 사람들이 매일 마시는 차는 대부분 이 둘의 몫이었다.

출처: Ronnefeldt

1984년 회사를 넘겨받은 사람은 가족이 아니었다. 광고업을 하다 70년대 말에 합류한 프랑크 홀츠아펠이라는 외부인이었다. 그가 내린 결정은 단순했다. 그 싸움에서 빠지겠다는 것이었다.

제품이 아니라 채널을 잘랐다

집중 전략이라고 하면 보통 제품군을 줄인다. 안 팔리는 라인을 정리하고 잘되는 하나에 자원을 몰아준다. 홀츠아펠은 반대로 했다. 제품은 그대로 두고 채널을 잘랐다. 소매를 접고 4성급과 5성급 호텔만 상대하는 회사로 다시 정의했다.

말처럼 쉬운 결정이 아니다. 소매를 버린다는 건 지금 들어오는 확실한 돈을 버린다는 뜻이다. 당시 차 업계에 호텔을 유일한 핵심 채널로 삼은 회사는 하나도 없었다. 아무도 안 간 길이니 참고할 성공 사례도 없었다.

대신 이 채널에는 소매에 없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체인 하나를 뚫으면 수십에서 수백 개 매장에 동시에 들어간다. 그리고 한 번 들어가면 경쟁사가 밀어내기 어렵다. 호텔은 납품처를 자주 바꾸지 않는다.

글을 읽을 줄 알면 차를 우릴 수 있다

채널을 잘 고른 것만으로는 여기까지 못 온다. 로네펠트가 진짜로 판 것은 차가 아니라 호텔의 골칫거리 하나였다.

출처: Ronnefeldt

5성급 호텔에 가면 바리스타는 교육을 받았고 바텐더는 위스키 산지를 30분씩 설명한다. 소믈리에는 코르크 냄새부터 맡는다. 차를 우리는 사람은 어떤가. 대개 티백을 잔에 던져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손님도 차를 모르니 쓰고 떫어도 그런가 보다 한다. 서로 모른 채로 넘어간다.

미국의 하니앤선스 창업자는 같은 문제를 발견하고 직접 호텔을 돌며 직원을 가르쳤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로네펠트는 다르게 풀었다. 사람을 안 믿고 제품을 고쳤다.

차 우리는 기술을 포장 안에 넣었다

로네펠트는 호텔에서 차가 나가는 자리를 전부 쪼갰다. 로비의 찻주전자, 바의 단잔, 조식 뷔페대, 객실 미니바, 객실에 이미 놓인 캡슐 커피머신. 자리마다 다른 제품을 만들고 전부 미리 정량으로 담아뒀다.

주전자용은 잎차를 미리 계량해 담은 큰 티백이다. 직원은 찻잎 양을 판단할 필요가 없다. 주전자에 넣고 물을 붓고 포장에 적힌 시간이 되면 따르면 끝이다. 우려내는 방법은 여섯 개 언어로 인쇄돼 있다.

컵용은 손잡이에 거는 종이 고리가 달린 큰 여과지 주머니다. 안에 든 건 분말이 아니라 잎차와 같은 등급의 온잎이고 주머니가 넉넉해 잎이 펴진다. 조식 뷔페대용은 같은 제품에서 낱개 포장만 뺀 것이다. 사람이 계속 집어가는 자리라 포장을 벗기는 시간이 아깝다. 객실용은 밀봉 티백이고 캡슐 커피머신용은 아예 차 캡슐이다. 버튼만 누르면 나온다.

차를 우리는 기술을 사람 손에서 떼어내 포장 안으로 옮겼다는 뜻이다. 글을 읽을 줄 알면 차를 우린다. 그것도 어려우면 버튼을 누른다.

남은 질문은 사람이 답하게 했다

제품이 못 푸는 문제가 하나 남는다. 손님이 차 메뉴판을 짚으며 이건 뭐가 다르냐고 물을 때다. 여기는 사람이 답해야 한다.

2003년부터 로네펠트는 호텔 직원 대상 인증 과정을 돌린다. 이틀 반 동안 차 80종을 마셔보고 산지와 우려내는 법을 배운 뒤 필기시험과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생김새와 맛만으로 차 20종을 맞혀야 실버 등급이 나온다. 골드는 스리랑카 다원에서 일주일을 보내야 하고 항공과 숙식 대부분은 회사가 댄다.

매년 100명 넘게 인증을 받았고 지금까지 세계에서 2만 명 넘는 호텔 직원이 이 교육을 거쳤다. 2013년에는 상하이에서도 반을 열었다. 차의 발상지에 독일 회사가 들어가 현지 호텔 직원에게 차 우려내는 법을 가르친 셈이다.

호텔 수만 곳이 무료 체험 매장이 됐다

여기까지는 기업 간 거래 이야기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 예상 못 한 게 하나 따라 나왔다.

출처: Ronnefeldt

해외 리뷰 사이트에 반복해서 올라오는 문장이 있다. 여행 중 호텔에서 마셨는데 집에 와서 찾고 있다는 말이다. 스페인에서 마시고 돌아와 결국 아마존에서 찾았다는 미국 소비자, 유럽 여행 중 반했다는 캐나다 소비자. 패턴이 똑같다. 출장이나 휴가로 호텔에 묵고 거기서 처음 마시고 집에 와서 검색한다.

로네펠트는 일찍부터 자사 온라인 몰과 아마존에 제품을 올려뒀다. 호텔에서 만난 손님이 휴대폰만 열면 바로 사게 해둔 것이다. 독일 리뷰 사이트 트러스티드숍스 평점은 4.8점대이고 트러스트파일럿은 4.5점이다.

매장을 안 열어도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수만 곳의 호텔이 이미 체험 매장 노릇을 하고 있다. 임차료도 인건비도 이 회사가 내지 않는다. 간판을 안 걸었을 뿐이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장을 가진 차 회사에 가깝다.

손님 말고 손님에게 내주는 사람을 잡아라

한국 F&B 사장에게 이 사례가 걸리는 지점은 호텔이 아니다. 채널을 보는 눈이다.

출처: Ronnefeldt

우리는 대개 길을 하나로 본다. 매장을 열고 손님을 직접 받는 것. 그래서 임차료를 감당하고 배달앱 수수료를 내고 광고비로 노출을 산다. 그 판에서 이기려면 옆 가게보다 돈을 더 써야 한다.

로네펠트가 고른 길은 다르다. 내가 손님을 직접 만나지 않고 남이 내 제품을 손님에게 내주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도 이런 자리는 많다. 동네 카페 수십 곳, 사무실 탕비실, 요양시설과 병원, 스터디카페, 소형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골프장 그늘집. 이 자리를 잡으면 한 번의 계약이 수십 개의 접점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 대부분 가격 때문에 무너진다는 점이다. 더 싸게 납품하겠다고 들어가면 다음 해에 더 싼 곳에 밀린다. 로네펠트는 가격으로 승부하지 않았다. 100g 잎차가 아마존에서 16~20달러다. 원화로 2만 원대 중후반이니 싼 값이 아니다. 대신 그 자리의 사람이 못 하는 일을 대신 해줬다.

시작점은 제품이 아니라 관찰이다. 내 제품을 손님에게 내주는 사람이 무엇을 못 해서 곤란해하는지 보는 것이다.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

내 제품을 다른 가게가 손님에게 내주는 장면을 한 번만 직접 가서 보라. 소스를 납품한다면 그 가게 주방에서 어떻게 덜어 쓰는지 보고 디저트를 납품한다면 직원이 어떻게 접시에 올리는지 본다. 거기서 그 사람이 망설이는 동작 하나만 찾으면 된다.

계량을 눈대중으로 하고 있다면 정량으로 나눠 담아 보낸다. 해동 시간을 몰라 감으로 하고 있다면 포장에 크게 찍어 보낸다. 그 한 가지를 없애주는 순간 거래처는 가격을 다시 계산하지 않는다. 다음 해에 더 싼 제안이 들어와도 바꾸기가 귀찮아진다.

로네펠트가 200년을 버틴 방식이 정확히 그거다. 손님에게 잘 보이는 대신 손님에게 내주는 사람의 일을 대신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