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은 거들 뿐” 오사카를 뒤흔든 브랜드
만약 당신의 가게 주력 상품이 음식이 아니라 ‘SNS에 올릴 한 장의 사진’이라면 어떻게 될까? 일본 오사카에 등장한 한 외식 브랜드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온몸으로 증명하며, Z세대의 지갑을 여는 새로운 공식을 제시하고 있다.

새로운 소비 권력, Z세대를 정조준하다
오늘날의 소비 시장, 특히 Z세대가 중심이 된 시장에서 ‘경험’과 ‘공유’는 더 이상 부가적인 요소가 아니다. 이들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그 과정 전체를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들의 SNS 피드(Feed)는 곧 라이프스타일의 증명서이며, 소비는 그 증명서를 채울 콘텐츠를 확보하는 행위와 같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본 기업이 있다. 바로 일본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 ‘이온 판타지(Aeon Fantasy)’다. 주로 가족 단위 고객에 집중하던 이 회사는 Z세대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2024년 11월 오사카 이온몰 이바라키에 1호점을 연 ‘피디 다이너 & 아케이드(Feedy Diner & Arcade)’다. 브랜드명 ‘Feedy’는 SNS의 ‘피드’에서 직접 따온 것으로, 이 공간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음식’이 아닌 ‘공간 경험’을 판매하는 전략
피디 다이너의 성공은 "음식도, 감성도, 즐거움도 모두 공유하고 싶게 만든다"는 명확한 콘셉트에서 출발한다. 이곳의 모든 요소는 고객이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공유하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찍기 위해 설계된 공간
피디 다이너에 들어서는 순간, 고객은 1950~60년대 미국 영화 세트장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강렬한 색감의 인테리어, 네온사인, 그리고 매장 입구에 자리한 빨간색 클래식카를 개조한 좌석은 그 자체로 완벽한 포토존이다. 이곳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장소가 아니라, 고객이 SNS 콘텐츠를 생산하는 일종의 스튜디오 역할을 한다.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소위 ‘인생샷’이 나오는 공간 설계는 고객을 자발적인 마케터로 만든다.

공유를 부르는 메뉴
이곳의 메뉴 역시 맛은 기본, 시각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틀간 버터밀크에 숙성시켜 11가지 향신료로 조리한 ‘피디 치킨(Feedy Chicken)’과 육즙 가득한 수제 버거는 먹음직스러운 비주얼로 시선을 압도한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고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메뉴에 있다. 제한 시간 동안 원하는 토핑을 마음껏 올릴 수 있는 ‘피디 선데이’ 아이스크림이나, 친구들과 나눠 마시는 대용량 칵테일은 단순한 메뉴를 넘어 하나의 즐거운 ‘이벤트’가 된다. 고객은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촬영하고 공유하며, 브랜드 경험을 스스로 확산시킨다.
체류 시간을 지배하는 ‘경험의 순환’ 구조
피디 다이너의 가장 무서운 점은 고객의 동선을 완벽하게 장악한다는 것이다. 식사 공간 바로 옆에는 최신 게임기와 스티커 사진 코너가 즐비한 아케이드가 붙어있다. 이는 ‘루프 다이너(Loop Diner)’라 불리는 전략적 배치다.
식사
다이너에서 버거와 치킨으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다.유희
바로 옆 아케이드로 이동해 게임을 즐기며 소화를 시킨다.재소비
게임을 즐기다 출출해지면 다시 다이너로 돌아와 디저트나 음료를 주문한다.
이 선순환 구조는 고객의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고 자연스럽게 추가 매출을 유도하는 효과적인 장치다.
Z세대를 위한 비밀 병기
‘CHALUCA’ 파우더룸
피디 다이너가 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정적 한 수는 아케이드 내부에 있다. 바로 스티커 사진 코너 ‘CHALUCA(차루카)’다. 흥미롭게도 이 이름은 카메라 셔터 소리를 뜻하는 한국어 ‘찰칵’에서 유래했다.

이곳에는 단순한 스티커 사진 기계를 넘어, 무료로 화장품과 고데기를 사용할 수 있는 파우더룸이 완비되어 있다. 화장품 브랜드 ‘클럽 코스메틱스’와 협업하여 최신 제품을 비치해두었는데, 이는 Z세대의 니즈를 정확히 저격한 것이다. 고객들은 최고의 상태로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에 머물며,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갖게 된다. 한국의 ‘인생네컷’ 열풍과 유사하지만, 그 경험의 깊이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린 전략이다.
결론 및 시사점
‘피디 다이너 & 아케이드’의 사례는 포화 상태인 한국의 자영업 및 외식 시장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제 소비자들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만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SNS를 채울 만한 ‘특별한 경험’과 ‘가치 있는 이야기’를 소비한다.
이 일본 브랜드의 성공은 단순히 음식점 옆에 오락실을 붙이는 물리적 결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핵심은 고객의 모든 동선과 경험을 ‘공유’라는 키워드 아래 재설계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영자들이 얻어야 할 인사이트
‘인스타그래머블’을 넘어 ‘콘텐츠화’를 고민하라
단순히 예쁜 음식을 넘어, 고객이 직접 참여하고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메뉴나 이벤트를 기획해야 한다.공간을 재정의하라
당신의 가게는 음식을 파는 곳인가, 아니면 고객이 추억을 만들고 기록하는 ‘무대’인가? 조명, 인테리어 소품,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콘텐츠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객의 ‘전후 경험’을 설계하라
고객이 가게에 오기 전(기대감 형성)과 다녀간 후(경험 공유)까지 고려한 마케팅이 필요하다. 피디 다이너의 파우더룸은 방문 경험의 정점을 찍는 완벽한 장치다.
결국 ‘피디 다이너’의 성공은 Z세대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공유하고 싶은 순간’을 설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맛집이 넘쳐나는 한국에서, 우리 가게만이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콘텐츠’는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