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을 절반으로 줄였는데 손님은 늘었다: 칠리스가 가격 대신 판 것

할인을 절반으로 줄였는데 손님은 늘었다: 칠리스가 가격 대신 판 것

작성일: 2026년 9월 14일
수정일: 2026년 9월 14일

할인으로 잡힌 매출이 38%에서 18%로 줄었다. 그런데 손님은 2년 연속 늘었다. 미국 캐주얼 다이닝 체인 칠리스 이야기다.

보통 이 두 숫자는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할인을 줄이면 손님이 빠지고 손님을 붙들려면 할인을 늘린다. 한국의 배달앱 쿠폰 경쟁이 딱 그 구조다. 칠리스는 그 반대로 갔고 3년 만에 동일 매장 매출을 50% 끌어올렸다. 연 매출은 2025 회계연도에 53억 4천만 달러(약 7조 3천억 원)로 1년 새 10억 달러 가까이 불었다.

비결은 가격표에 없다. 칠리스가 판 것은 싼 값이 아니라 "여기서는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허가였다. 그 허가를 어떻게 설계했는지 따라가 본다.

손님은 가격이 아니라 허가에 반응한다

칠리스는 2025년 미국 캐주얼 다이닝 중 가장 많이 방문한 브랜드이면서 동시에 가장 저렴한 브랜드였다. 1인 결제액이 경쟁사보다 3달러(약 4천 원) 낮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격으로 이긴 것처럼 보인다.

치즈버거와 감자튀김 옆에 살사를 곁들인 칩과 콜라 잔이 놓인 3 for Me 세트
출처: Chili's Grill & Bar

그런데 증권사 에버코어의 분석가 데이비드 파머는 칠리스의 가치 전략을 "눈속임"이라고 불렀다. 칭찬이다. 실제로 싸게 파는 게 아니라 싸다고 느끼게 만드는 장치가 정교하다는 뜻이다.

10.99달러 세트는 메뉴판 맨 끝에 있다

대표 할인 세트인 3 for Me는 버거와 감자튀김에 무한 리필 음료와 칩까지 붙여 10.99달러(약 1만 5천 원)다. 맥도날드 세트 가격에 앉아서 먹는 식사를 준다. 칠리스가 광고에서 앞세우는 것도 이 세트다.

메뉴판에서는 다르다. 화려한 사진과 색으로 채운 메뉴판을 끝까지 넘겨야 흰 박스 안에 조용히 놓인 3 for Me가 나온다. 손님은 세트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매장에 들어온 뒤 눈앞에서 더 비싼 메뉴를 고른다. 할인은 문을 열게 하는 미끼고 지갑을 여는 건 "이 정도는 시켜도 된다"는 분위기다.

그릇 하나 바꿨더니 매출 비중이 두 배 넘게 뛰었다

그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메뉴가 트리플 디퍼다. 애피타이저 세 가지를 고르는 이 메뉴는 10년째 메뉴판에 있었다. 2022년만 해도 매출의 6~7%를 차지하는 평범한 메뉴였다.

종이를 깐 바스켓에 슬라이더 두 개와 치킨 텐더 그리고 모차렐라 스틱을 소스와 함께 담은 트리플 디퍼
출처: Chili's Grill & Bar

2024년 2월 한 틱톡커가 칠리스 모차렐라 스틱을 베어 물어 치즈가 길게 늘어나는 영상을 올렸고 이 영상이 400만 번 넘게 재생됐다. 그 뒤 트리플 디퍼는 최근 분기 기준 매출의 16%까지 올라왔다. 칠리스가 1년에 쓰는 모차렐라는 1,200만 파운드에서 6,500만 파운드로 다섯 배 넘게 늘었다.

신메뉴가 아니라 있던 메뉴에 조명을 비췄다

업계에서는 이 사례를 바이럴을 노린 '스턴트 푸드'로 읽는다. 칠리스 마케팅 부사장 제시 존슨은 그게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트리플 디퍼는 10년 된 메뉴고 칠리스가 한 일은 손님이 이미 어떻게 먹고 있는지를 보고 거기에 조명을 비춘 것뿐이라는 얘기다.

조명은 그릇이었다. 칠리스는 트리플 디퍼를 높이 세운 바스켓에 담아 테이블 위에서 더 크고 더 푸짐해 보이게 만들었고 이후 메뉴 대부분을 바스켓으로 옮겼다. 영상이 터지고 몇 달 뒤에는 모차렐라 스틱에 매운 소스를 입힌 버전을 비밀 메뉴로 냈다. 마가리타도 같은 논리다. 2025년 한 해 레몬 드롭 한 종류만 100만 잔이 팔렸다. 화려한 색과 큰 잔이 "오늘은 좀 써도 된다"는 신호를 보낸다.

푸짐해 보이는 것이 곧 허가다. 손님은 접시가 크면 가격을 따지지 않는다.

허가를 팔려면 주방이 먼저 버텨야 한다

풍성한 접시를 약속했는데 늦게 나오거나 빠지면 허가는 배신이 된다. 그래서 칠리스의 회복은 마케팅보다 주방에서 먼저 일어났다. 2022년 브링커 인터내셔널 CEO로 온 케빈 호크먼은 P&G와 KFC를 거친 사람인데 부임 직후 매장을 돌며 직원들에게 물었다. 요즘 뭐가 신나는지. 그리고 당신이 CEO라면 내일 당장 뭘 바꾸겠는지.

검은 철판 위에 구운 치킨과 새우와 스테이크를 올린 파히타 트리오와 옆에 놓인 토르티야
출처: Chili's Grill & Bar

새우 여섯 마리 세는 일부터 없앴다

답은 작은 것들이었다. 조리 보조는 한 시간마다 새우를 정확히 여섯 마리씩 봉지에 나눠 담고 있었다. 호크먼은 이 작업을 없애면서 하루 한 시간에 매장 1,100개를 곱하면 1년에 46년 치 노동이라고 계산했다. 감자튀김 시즈닝 통은 구멍을 키워 30번 흔들던 것을 10번으로 줄였다. 파히타 치킨은 컨베이어 오븐에서 8분 걸리던 것을 2.5분짜리 오븐으로 바꾸고 미리 구워 두던 방식을 주문 즉시 조리로 돌렸다.

패스트컴퍼니에 따르면 태블릿으로 넣은 주문 20건 중 1건이 주방에 도착하지 않는 버그도 있었다. 하루 300테이블이면 15접시가 사라지는 셈이다. 프로그램을 고치고 와이파이 공유기를 갈아 잡았다. 메뉴는 약 50종을 지웠고 매장당 직원은 30~40% 늘렸다. 3년간 수리와 유지보수에만 1억 달러(약 1,360억 원)를 썼다.

호크먼은 이 변화의 80~90%가 본사가 아니라 매장 직원에게서 나왔다고 말한다. 신메뉴 개발이 아니라 마찰 제거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치즈 영상이 터졌을 때 주방이 그 손님을 받아낼 수 있었던 이유다.

인테리어까지 90년대로 되돌린 이유

허가는 공간에서도 나온다. 칠리스는 최근 몇 년간 차갑고 공장 같은 인테리어를 써 왔는데 이제 1990년대의 요란한 스타일로 돌아간다. 크림색 바탕에 벽돌색으로 제트스키 탄 고추가 그려진 프랑스제 벽지에 멕시코 도자기풍 타일과 네온 고추 간판이 들어간다. 치즈 늘어나는 장면을 그린 액자까지 벽에 건다. 1990년대에 안내 스탠드 고추 그림을 그렸던 화가를 은퇴 후 다시 불러 같은 그림을 그리게 했다.

알록달록한 타일 벽 앞에 빨간 가죽 부스와 나무 테이블이 늘어선 새 디자인 칠리스 매장 내부
출처: Chili's Grill & Bar

요란한 공간이 만드는 소비의 자유

텍사스 리칠랜드 힐스 매장이 시제품이고 올가을부터 10년에 걸쳐 북미 1,200여 매장에 순차 적용한다. 살을 뺀 미니멀 공간에서는 애피타이저로만 저녁을 때우는 일이 어색하다. 요란한 공간에서는 자연스럽다. 인테리어가 곧 허가의 배경이다.

할인 세트를 메뉴판 맨 뒤로 보내라

한국 매장의 현실은 칠리스의 2022년과 닮았다. 배달앱 쿠폰과 1+1로 손님을 부르고 그 손님이 쿠폰 없이는 안 오는 구조. 할인 비중이 커질수록 이익률은 내려가고 그렇다고 할인을 끊으면 주문이 빠질까 무섭다.

식당 원탁에 앉은 두 손님이 종이 메뉴판을 펼쳐 놓고 고르는 장면
출처: Magnific magnific

칠리스의 순서를 따라가 보면 답이 나온다. 먼저 할인은 없애지 말고 자리를 옮긴다. 배달앱 첫 화면이나 메뉴판 맨 앞에 두던 할인 세트를 맨 뒤 작은 자리로 내리고 손님이 지금 가장 많이 시키는 메뉴를 그 자리에 올린다. 신메뉴를 만들 필요가 없다. 이미 잘 나가는 메뉴를 더 큰 그릇에 담고 사진을 다시 찍고 이름 옆에 한 줄만 붙이면 된다.

주방의 마찰을 없애야 접시를 지킨다

그다음 주방에서 마찰 하나를 찾는다. 소분 작업이든 미리 튀겨 두는 습관이든 주문이 누락되는 포스 화면이든 직원에게 "내일 당장 하나 바꾼다면 뭘 바꾸겠느냐"고 물으면 나온다. 그 하나를 없애면 접시가 빨리 나가고 접시가 빨리 나가면 큰 그릇을 약속해도 지킬 수 있다.

이번 주에 할 일은 하나다. 지난달 주문 데이터에서 가장 많이 나간 메뉴를 골라 그릇을 한 치수 키워 메뉴판 맨 앞에 올려 보라. 손님이 받아 든 접시가 커지는 순간 가격 대신 허가를 파는 장사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