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장을 닫고 콜라에 약을 탔다, 펩시의 필사적인 반란
100년을 이어온 숙명의 라이벌전이 막을 내리고 있다. 한 손으로는 공장의 문을 닫으며 직원을 해고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건강’이라는 칼을 빼 든 미래의 콜라를 선보인다. 이것은 펩시가 생존을 위해 벌이는 처절한 이중 작전이며, 더 이상 코카콜라와의 ‘맛’ 경쟁이 무의미해졌음을 알리는 대담한 선전포고다.
펩시의 혁신은 화려한 쇼케이스가 아닌, 차갑고 절박한 현실에서 시작됐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설탕 가득한 탄산음료를 찾지 않는다. 실제 미국 소비자의 월간 콜라 구매 빈도는 2020년 9.4회에서 2023년 7.7회로 급감했다.

이러한 시장의 외면은 뼈아픈 숫자로 돌아왔다. 펩시의 북미 음료 사업부는 ‘펩시 제로 슈거’가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분기 매출량이 2%나 감소했다. 시장이 보내는 명백한 ‘거절’의 신호 앞에서, 펩시는 과거의 성공 방식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바로 최근 디트로이트 공장 폐쇄와 83명의 직원 해고 결정이다. 이는 작년부터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지에서 이어진 구조조정의 연장선일 뿐이다.
파괴를 통한 창조: 펩시의 양날의 검

생존의 기로에 선 펩시는 두 개의 칼을 동시에 빼 들었다. 하나는 과거의 출혈을 막는 방어의 칼, 다른 하나는 미래를 여는 공격의 칼이다.
첫 번째 칼: 과거를 베어내다 (방어)
공장 폐쇄와 인력 감축은 출혈을 막기 위한 응급처치다. 수익성이 악화되는 전통 설탕 음료 사업부를 과감히 축소하고, 비효율적인 생산 시설을 통폐합하여 고정 비용을 줄이고 운영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이는 미래를 위한 총알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두 번째 칼: 미래를 창조하다 (공격)

그렇게 확보한 자원으로 펩시는 ‘기능성(Function)’이라는 새로운 판을 짰다. 그 선봉장이 바로 2025년 출시될, 장 건강에 도움을 주는 프리바이오틱 섬유질 3g을 첨가한 ‘펩시 프리바이오틱 콜라’다. 이는 “콜라는 몸에 좋지 않다”는 오랜 전제를 뒤엎는 혁명적 시도다.
특히 주목할 점은 속도다. 펩시는 최근 약 20억 달러에 인수한 기능성 음료 브랜드 ‘Poppi’의 성공 방정식을 즉시 자사의 핵심 브랜드에 이식했다. R&D에 시간을 쏟는 대신, 성공적인 M&A를 통해 시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는 영리함을 보여준 것이다. 펩시는 이제 코카콜라의 경쟁자가 아닌, ‘기능성 건강음료’ 시장의 개척자로 스스로를 재정의하고 있다.
칼날 위의 혁신, 3가지 생존 지침
이 거대 기업의 ‘파괴를 통한 창조’ 전략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한국의 자영업자들에게 매우 현실적인 교훈을 준다.

버리는 것이 시작이다: 메뉴의 구조조정
새로운 시도를 하기 전에, 당신의 가게에서 ‘공장 폐쇄’가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점검하라. 잘 팔리지 않거나, 만들기만 번거롭고 마진이 낮은 메뉴는 과감히 삭제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메뉴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히트 상품에 집중할 소중한 자원과 시간을 확보하는 과정이다. 혁신을 위한 투자금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비용 절감에서 나온다.
이길 수 없다면 새 판을 짜라: '제로'가 아닌 '플러스'를 팔아라
옆 가게와 100원짜리 가격 경쟁을 하는 것은 펩시가 버린 ‘과거의 경쟁’이다. 단순히 해로운 것을 뺀 ‘제로’에 만족하지 말고, 건강, 미용, 활력 등 긍정적인 가치를 더한 ‘플러스’ 상품에 집중하라.
‘우리 동네 최초 저탄고지 전문 키토 김밥집’을 선언하거나, 카페에서 ‘집중력 향상에 좋은 L-테아닌 첨가 커피’를 시그니처로 내세울 수 있다. 베이커리에서 ‘장 건강에 좋은 유산균을 넣은 사워도우’를 선보일 수도 있다. 이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넘어,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것이다.
명분을 선점하라: 가격을 넘어 가치를 파는 법
펩시는 미국 정부의 건강 캠페인에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사회적 책임’이라는 명분까지 챙겼다. 개인의 건강을 넘어 사회 전체의 웰빙 트렌드에 발맞추는 것은 강력한 마케팅 도구다.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메뉴를 개발하여 로컬 상생의 가치를 강조하거나, 식당에서 “저희는 나트륨 배출에 좋은 칼륨이 풍부한 식재료만 사용합니다”라고 선언하며 ‘저염’이 아닌 ‘배출’이라는 새로운 건강 규칙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고객에게 가격을 넘어 당신의 가게를 선택해야 할 명확하고 독점적인 이유를 제공하며, 강력한 브랜드 충성도를 구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