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끝에서 녹아 사라지는, ‘생(生)’이라는 약속

혀끝에서 녹아 사라지는, ‘생(生)’이라는 약속

FBK 편집부
작성일: 2025년 8월 7일
수정일: 2025년 8월 7일

빵 한 조각을 토스트기에 넣지 않고, 도넛의 폭신함이 채 익지 않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 우리는 ‘생(生)’이라는 단어가 품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와 마주한다.

이토록 부드러운 반항, 일본의 ‘나마(生)’는 식감으로 말한다

빵의 존재 이유를 뒤엎은 한 입의 충격

모든 것은 빵의 테두리에서 시작되었다. 단단하고 거칠어 외면받던 그 부분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녹아내리게 만들겠다는 발상. 오사카의 ‘노가미(乃が美)’가 선보인 생식빵 ‘나마쇼쿠팡(生食パン)’은 ‘토스트하지 않고 그냥 먹는 것이 가장 맛있는 빵’이라는, 어찌 보면 빵의 숙명에 반하는 선언과 함께 등장했다.

출처 : Freepik의 fbtnals90작가

그들이 말하는 ‘나마(生)’는 신선함이나 날것의 의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혀가 기억하는 모든 빵의 기억을 배신하는, 압도적인 부드러움과 촉촉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였다. 입에 넣자마자 솜사탕처럼 스러지는 식감은 순식간에 일본 전역을 휩쓸었고, 사람들은 빵을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섰다. 이는 음식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소비하는 현상에 가까웠다.

케이크와 도넛의 경계를 허무는 촉촉함

생도넛은 노티드의 도넛과 유사하다. (출처 : Freepik의 rsooll작가)

생식빵이 열어젖힌 ‘식감의 신세계’는 곧 다른 디저트의 문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도쿄 나카메구로 골목에서 시작된 ‘아임 도넛?(I’m donut ?)’은 기존의 퍽퍽하고 기름진 도넛의 이미지를 완벽히 파괴했다. 그들의 ‘나마도넛(生ドーナツ)’은 이름 그대로였다. 수분 함량을 극단적으로 높인 반죽은 튀겨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브리오슈나 잘 만든 카스텔라처럼 입안을 촉촉하게 적셨다.

출처 : pepsi japan

‘나마’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펩시가 선보인 ‘나마콜라(生コーラ)’는 열을 가하지 않은 향신료로 만들어, 기존 콜라의 날카로운 자극 대신 섬세하고 부드러운 탄산을 약속했다. 일본에서 ‘나마’는 가공의 흔적을 지우고 원재료의 순수한 상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려는 장인 정신의 또 다른 표현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생(生)’은 이미 다른 맛으로 존재했다

일본의 ‘나마’ 열풍이 있기 전부터, 한국인의 미각은 이미 ‘생(生)’이라는 키워드에 익숙했다. 다만 그 결은 사뭇 달랐다. 한국에서 ‘생’은 식감의 혁명이라기보다, ‘진짜’ 혹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품질 보증수표와 같았다.

혀를 감싸는 고급스러움, 혹은 장까지 살아가는 치열함

롯데의 ‘몽쉘 생크림 케이크’나 오리온의 ‘생크림파이’를 떠올려보자. 여기서 ‘생크림’은 식물성 크림이 아닌, 진짜 우유로 만든 고급스러운 원재료의 상징이다. 덕분에 우리는 파이 한 조각에서도 입안 가득 부드럽게 차오르는 풍성함을 기대하게 되었다.

풀무원의 ‘생면식감’은 또 다른 약속을 건넨다. 기름에 튀기지 않고 바람으로 말린 ‘생면’은 라면의 원죄처럼 여겨지던 기름기 대신, 갓 뽑아낸 면발의 건강하고 탱탱한 식감을 보장했다.

출처 : CJwellcare

더 나아가 CJ의 ‘생유산균’에 이르면, ‘생(生)’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장까지 ‘살아서’ 도달하는 치열한 기능성을 담보하는, 과학적 신뢰의 언어가 된다.

그리고 대만은 ‘날것’에 대한 갈망으로 응답했다

일본에서 시작된 ‘나마’의 물결이 바다를 건너 대만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이미 완벽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건강과 편리성, 그리고 약간의 사치를 추구하는 대만 소비자들에게 ‘나마’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건강이라는 시대정신이 일본의 감성과 만났을 때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대만에서 ‘건강’과 ‘천연 원료’는 식품 시장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여기에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소포장, 고품질 간편식 선호 트렌드가 맞물렸다.

이때 등장한 일본의 생식빵과 생도넛은 마치 이 모든 요구에 대한 해답처럼 보였다. ‘나마’라는 이름 아래, 그것은 ‘건강한 재료로 만든 프리미엄 간편 디저트’라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일본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선호를 가진 젊은 세대는 이 새로운 미식 경험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고, 타이베이 골목에는 도쿄와 마찬가지로 긴 줄이 늘어섰다.

결국 우리는 왜 ‘생(生)’의 감각을 원하는가

일본의 부드러움, 한국의 신뢰, 대만의 열광. 표현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세 곳의 시장은 ‘생(生)’이라는 단어가 가진 원초적인 힘에 매료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왜일까.

이는 어쩌면 복잡하게 가공되고 첨가된 현대 식품에 대한 무의식적인 피로감의 발현일 수 있다. ‘생(生)’이라는 단어는 소비자에게 “이것은 최소한으로 가공되었고, 원재료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강력하고 직관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것은 성분표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안도감이다.

어쩌면 ‘생(生)’은 단순히 덜 익거나 신선하다는 상태를 넘어, 복잡한 가공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픈 우리의 본능이 찾아낸 가장 직관적인 언어일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의 혀가 갈망하는 것은, 어쩌면 맛이 아니라 그 원초적인 감각 그 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