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게 팔수록 남는 장사’의 치밀한 설계
일본의 편의점은 고객의 ‘한 달’을 저당 잡는 게임을 설계했고, 여의도의 한 중식당은 고객의 ‘한순간’을 지배해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단순히 ‘많이 사면 싸다’는 뻔한 할인 이면에 숨겨진, 고객의 본능을 건드리는 치밀한 심리 전략을 파헤쳐 본다.
쇼핑을 ‘레벨 업’하는 퀘스트로 만들다
최근 일본 세븐일레븐은 ‘사면 살수록 등급 UP 챌린지’를 열었다. 이는 고객의 한 달간 소비를 하나의 정교한 게임으로 설계한 것이다. 앱 바코드를 찍고 물건을 사면 누적 구매액에 따라 등급이 오른다. 가령 1,000엔(약 9천 원)을 쓰면 ‘브론즈’가 되고, 15,000엔(약 13만 5천 원)을 누적하면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에 도달한다.

단순히 등급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등급이 상승할 때마다 인기 상품 쿠폰 5장이 앱으로 즉시 지급되어, 최대 20장의 쿠폰을 손에 쥘 수 있다.
마치 게임에서 레벨 업을 할 때마다 보상 아이템을 받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이 게임의 최종 보스는 오직 플래티넘 등급을 달성한 5,000명에게만 주어지는 ‘한정판 시그니처 텀블러’다.

세븐일레븐은 이처럼 ‘등급’, ‘도전 과제’, ‘희귀 아이템’이라는 게임의 문법, 즉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을 통해 소비의 본질을 바꿨다.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의지가 불타오르는 인간의 ‘목표 달성 심리’를 정확히 겨냥한 것이다. 고객은 ‘돈을 쓴다’고 느끼는 대신, ‘미션을 클리어하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며 기꺼이 다음 등급을 향해 지갑을 연다. 이 전략의 목표는 명확하다. 단기 매출이 아닌, 고객의 장기적인 구매 습관을 설계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미스터향’이 있다

한편 서울 여의도의 중식당 ‘미스터향’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첫 병에 5만 원인 연태고량주를 두 번째 병은 2만 5천 원, 세 번째 병은 1만 2천5백 원에 판매하는 ‘반의반 이벤트’다.
이곳의 무기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와 ‘손실 회피(Loss Aversion)’ 심리다. 고객의 머릿속에는 첫 병의 가격인 ‘5만 원’이 강력한 기준점으로 박힌다.

이 때문에 두 번째 병은 ‘절반 가격’이라는 이득을 넘어, 이 기회를 놓치면 ‘2만 5천 원을 손해 본다’는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득의 기쁨’보다 ‘손실의 고통’을 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추가 주문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 전술은 고객의 장기적인 방문이 아닌, ‘그날 그 자리’의 객단가를 극대화하는 데 모든 화력이 집중된다.
‘습관’에 투자할 것인가, ‘순간’을 지배할 것인가
세븐일레븐의 방식이 고객의 일상에 스며드는 ‘전략’이라면, 미스터향의 방식은 눈앞의 고객을 공략하는 날카로운 ‘전술’이다. 하나는 고객의 한 달을 묶어두는 시스템을 팔고, 다른 하나는 술자리의 흥분을 자극해 순간의 결정을 판다.
두 사례는 우리 주변의 비즈니스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고객에게 무엇을 팔고 싶은가? 우리 카페의 단골손님이 ‘이번 달의 커피 마스터’가 되는 성취감을 느끼게 할 것인가, 아니면 디저트를 추가 주문하면 ‘오늘만 아메리카노 천 원’ 혜택으로 테이블 매출을 즉시 끌어올릴 것인가.
결국 핵심은 비즈니스의 목표에 맞춰 고객의 어떤 심리를 공략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고객의 발걸음을 꾸준한 ‘습관’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순간’을 지배하여 최고의 경험을 선물할 것인가. 정답은 없지만,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비즈니스의 격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