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뇌절’이라 부를 때 놓치는 것들
하인즈가 케첩으로 스무디를 만들었다는 소식은, 잘 짜인 농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이 기묘한 음료는 단지 웃어넘기기엔, 오늘날 시장과 소비자의 욕망에 대한 너무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제는 케첩마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하인즈와 스무디킹의 협업 발표였다. 감자튀김의 영원한 단짝, 그 상징적인 케첩을 스무디에 넣겠다는 선언.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반응은 명료했다.
‘선 넘네.’

한때, '곰표 맥주'로 시장을 열광시킨 성공적인 만남이 있었다.
그 짜릿한 성공은 곧 하나의 공식이 되었고, 수많은 브랜드가 앞다퉈 그 공식을 복제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로고와 낯선 상품의 조합이 쏟아졌다.
처음의 신선함은 점차 피로감으로 변했고, 어느새 소비자들은 그저 화제성만을 좇는 무리한 결합에 ‘뇌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인즈 케첩 스무디는 바로 그 씁쓸한 잔상 위로 포개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 기이한 도전은 단순한 광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의 브랜드들이 처한 절박한 현실을 반영한다.
주목받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시대의 생존법
스크롤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려가는 세상. 브랜드들은 왜 자꾸 이런 ‘선을 넘는’ 모험을 감행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주목받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보와 상품의 소음 속에서 소비자의 눈길을 단 1초라도 붙잡기 위한 처절한 싸움. 콜라보는 이 전쟁에서 가장 가성비 높은 무기다. 낯선 조합이 주는 충격은 그 자체로 막대한 광고비를 태운 캠페인보다 강력한 바이럴을 일으킨다.
하인즈라는 전통적인 브랜드가 스무디킹의 젊은 고객을, 스무디킹이 하인즈의 폭넓은 인지도를 나눠 갖는 ‘팬덤 교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의 회춘’이다.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젊은 세대에게 ‘힙’하고 ‘살아있는’ 존재로 인식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케첩 스무디는 하인즈가 그저 식료품 저장고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지금의 문화적 맥락에서 기꺼이 유머와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유연한 브랜드임을 선언하는 행위인 셈이다.

낯섦을 소유하고, 경험을 과시하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왜 이 기묘한 놀이에 기꺼이 동참하는 걸까? 여기에는 ‘가잼비(가격 대비 재미)’를 추구하는 ‘펀슈머(Fun+Consumer)’의 심리가 깔려있다.
우리는 더 이상 상품의 기능만 소비하지 않는다. 상품에 얽힌 이야기, 경험, 그리고 그것을 공유할 때 얻게 되는 ‘소셜 화폐(Social Currency)’를 소비한다. ‘케첩 스무디 마셔본 사람?’이라는 질문에 손을 들 수 있는 자격, 인스타그램에 #HeinzKetchupSmoothie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는 인증샷은 그 자체로 ‘나는 이렇게 낯설고 재밌는 경험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가 된다.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은 이 욕망에 불을 지핀다. 지금 아니면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은 평범한 스무디 한 잔을 특별한 사건으로 격상시킨다. 결국 소비자에게 콜라보 상품 구매는 몇천 원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저렴하고 짜릿한 모험이자, 유쾌한 놀이가 된다.
낯선 조합의 변명은, 언제나 맛이 한다
물론 그럴싸한 명분과 심리적 동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괴식과 혁신을 가르는 기준은 결국 혀끝에서 결정된다. 뉴욕에서 열린 사전 시음회, 그리고 한정 판매가 시작된 매장들에서 쏟아진 후기는 놀라운 반전이었다.

예상 밖의 조화
가장 지배적인 반응은 “이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맛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케첩의 강렬한 맛 대신, 딸기와 라즈베리 풍미 뒤에 은은하게 따라오는 토마토의 신선한 산미를 느꼈다고 평했다. 스페인의 차가운 토마토 수프 ‘가스파초’를 닮았다는 평부터, 달콤한 스무디의 끝 맛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감칠맛이 매력적이라는 구체적인 묘사까지.
이 스무디는 케첩 맛 음료가 아니었다. 토마토라는 과일의 가능성을 재발견한 스무디였다. 하인즈는 소비자에게 케첩을 먹인 게 아니라, 케첩의 본질인 토마토를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게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뇌절’이라 비판했던 수많은 콜라보와 결정적인 차이가 발생한다.
우리는 왜 팔도 비빔칩에 배신감을 느꼈을까
생각해보자. 곰표 밀맥주의 성공 이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브랜드 맥주들, 미원 맛소금 팝콘, 팔도 비빔칩. 이들 중 일부는 반짝 성공했지만, 대부분은 소비자들의 차가운 외면을 받았다. 왜일까?
존중이 없는 결합
우리가 곰표 밀가루에 열광한 것은 단지 그 이름 때문이 아니었다. 밀가루 회사가 만든 진짜 밀맥주라는 진정성과 레트로한 감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팔도 비빔면을 사랑하는 이유는 면을 삶고, 찬물에 헹궈, 마법의 비빔 소스를 짜 넣는 일련의 경험과 그 독보적인 맛 때문이다.
하지만 과자가 된 비빔면에는 그 경험의 핵심인 ‘소스’의 맛이 제대로 담기지 않았고, 구두약 캔에 담긴 맥주에는 브랜드의 철학 대신 기이함만 남았다. 이는 브랜드의 핵심 자산을 존중하지 않은 채, 인지도에만 무임승차하려는 시도였다. 소비자들이 느낀 것은 재미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했던 브랜드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훌륭한 협업은 화학 반응이고, 나쁜 협업은 물리적 혼합이다
하인즈 케첩 스무디는 우리에게 콜라보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성공적인 협업은 단순히 두 브랜드를 나란히 놓는 물리적 혼합이 아니다. 각자의 정체성이 만나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화학 반응에 가깝다.
그 반응이 일어나려면 서로의 핵심을 꿰뚫는 이해와 존중이 필수적이다. 하인즈는 스무디킹의 ‘신선한 과일 블렌드’라는 본질을 헤치지 않으면서 케첩의 핵심인 ‘토마토의 풍미’를 녹여냈다. 그 결과 ‘케첩 스무디’라는 도발적인 이름 뒤에, ‘맛있는 토마토 베리 스무디’라는 놀라운 결과물을 숨겨둘 수 있었다.
결국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로고가 아니라, 그 로고가 약속하는 가치와 경험이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 콜라보는 가장 창의적인 실패가 된다.
어쩌면 우리가 ‘뇌절’이라 부르는 것들의 경계는, 그저 기이함과 진정성 사이에서 우리가 아직 길을 찾지 못한, 미지의 영역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