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메뉴 주문하는 어른들, 골치 아픈 메뉴 안에 답이 있다.

키즈메뉴 주문하는 어른들, 골치 아픈 메뉴 안에 답이 있다.

작성일: 2025년 8월 28일
수정일: 2025년 8월 28일

일본에서 500엔짜리 해피밀 장난감이 수만 엔에 거래되고, 음식이 길거리에 버려지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소동에서, 가격 저항에 부딪힌 사장님들의 돌파구가 될 ‘숨은 고객’의 절박한 신호를 읽어야 합니다.

44%의 조용한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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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Unsplash의 Visual Karsa작가

데이터는 때로 가장 점잖은 방식으로 혁명을 예고합니다. 미국 성인의 44%가 레스토랑에서 어린이를 위한 메뉴를 주문한 경험이 있다는 통계가 그렇습니다. 이 숫자는 2019년 대비 30%나 급증한 수치입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명료합니다. 치솟는 외식 물가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더 저렴하고, 양이 적으며, 단순한 선택지를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끝 모를 ‘런치플레이션’의 터널 속에서 한 끼에 1만 원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해진 우리에게도 지극히 익숙한 풍경입니다.

출처 : Freepik

하지만 한국 식당에서 성인이 어린이 메뉴를 주문하는 것은 종종 ‘민폐’ 논란으로 번집니다. "어린이 메뉴는 서비스 차원이라 이윤이 거의 없는데, 성인이 시키면 남는 게 없다"는 사장님의 하소연과 "양이 적어 시켰을 뿐인데 눈치가 보인다"는 손님의 볼멘소리가 팽팽하게 맞섭니다. 실제로 많은 사장님들은 객단가 하락을 우려해 ‘14세 이하만 주문 가능’이라는 규칙을 내겁니다.

이 팽팽한 대치 국면은 우리가 이 현상의 본질을 놓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44%라는 거대한 숫자는 단순히 ‘저렴한 메뉴를 원하는 고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기존 메뉴판의 문법으로는 더 이상 만족시킬 수 없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입니다. 고객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상황과 욕망에 정확히 부합하는 ‘가치’를 구매합니다. 그리고 지금, 44%의 고객은 당신의 메뉴판에 없는 바로 그 ‘가치’에 굶주려 있습니다.

버려진 햄버거에 담긴 욕망의 정체

출처 : 맥도날드

그 가치의 정체가 무엇인지, 최근 일본 맥도날드 사태가 극적으로 폭로했습니다. ‘별의 커비’, ‘산리오’ 같은 인기 캐릭터 장난감이 포함된 해피밀이 출시되자마자 전국적인 품절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전문 리셀러들은 수십 개의 해피밀을 사재기한 뒤 장난감만 빼내고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그대로 버리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 소동의 중심에는 어린이가 아닌, 어린 시절의 향수와 수집욕에 불타는 ‘어른이(Kidult)’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500엔짜리 햄버거 세트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희소성’과 ‘자기만족’이라는 감성적 가치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심지어 그 가치를 얻기 위해 음식이라는 본질을 폐기하는 비용까지 감수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섬뜩할 만큼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고객이 느끼는 가치가 충분히 높다면, 음식의 원가나 양은 더 이상 가격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출처 : 맥도날드

우리는 이 지점에서 ‘어린이 메뉴를 주문하는 44%의 성인’과 ‘해피밀을 사재기하는 어른이’를 연결해야 합니다. 전자가 ‘부담 없는 소비’라는 이성적 가치를 조용히 추구했다면, 후자는 ‘소유의 기쁨’이라는 감성적 가치를 격렬하게 탐닉했습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이들 모두 기존의 ‘성인용 메뉴’가 제공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에게 딱 맞는 ‘최적의 가치’를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하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당신의 메뉴판은 제안서입니까, 가격표입니까?

고객의 저항 없이 가격을 인상하는 방법은 무엇이냐는 질문은, 이제 초점이 맞지 않습니다.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고객이 기꺼이 더 높은 가치를 지불하게 만들 ‘새로운 제안’은 무엇인가? 버려진 햄버거는 우리에게 그 제안의 실마리를 던져줍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의 덫을 넘어 ‘어른의 플레이트’로

가격을 올리는 대신 양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은 고객의 저항을 피하려는 소극적 대응에 가깝습니다. 이는 종종 고객에게 ‘눈속임’이라는 인상을 주며 신뢰를 잃기 쉽습니다. 관점을 바꿔, 양이 적은 메뉴를 ‘저렴한 버전’이 아니라 ‘가치 밀도를 높인 새로운 경험’으로 제안해야 합니다.

‘어른이 메뉴’를 ‘1인 고객을 위한 시그니처 테이스팅 코스’, ‘다양한 메뉴를 맛보고 싶은 미식가를 위한 스몰 플레이트’ 등으로 재정의하고 포지셔닝하는 전략적 설계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양의 축소가 아니라, 고객 경험의 정교한 압축입니다.

메뉴판을 놀이터로 개방하라

MZ세대가 아이스크림에 수십 가지 토핑을 조합하며 즐거워하는 ‘토핑경제’는 중요한 힌트를 줍니다. 모든 고객이 동일한 구성의 세트 메뉴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핵심 메뉴는 단순하고 가볍게 유지하되, 고객이 자신의 취향과 지불 의사에 따라 다채로운 선택지를 추가할 수 있도록 메뉴판을 ‘놀이터’처럼 개방하는 것입니다.

출처 : Freepik의 azerbaijan-stockers

기본 메뉴의 가격 장벽을 낮추어 새로운 고객의 유입을 유도하고, 매력적인 추가 선택지(특별한 소스, 고급 식재료, 사이드 메뉴)를 통해 객단가를 보완하거나 오히려 높일 수 있습니다. 이는 고객에게 ‘내가 내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쓰고 있다’는 통제감과 만족감을 선사하는 가장 현대적인 방식입니다.

당신 가게의 ‘커비 인형’은 무엇인가?

결국 일본의 리셀러들을 움직인 것은 햄버거가 아닌 ‘커비 인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의 가게에서 고객을 설레게 할 ‘커비 인형’은 무엇입니까? 반드시 장난감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가게만의 철학이 담긴 한정판 스티커, 단골에게만 제공되는 비밀 메뉴,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한 독특한 디자인의 식기일 수도 있습니다.

음식의 맛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이제 고객은 그 맛을 담아내는 그릇과 이야기, 그리고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에 지갑을 엽니다. 가격표에 적힌 숫자를 올리기 전에, 그 숫자를 기꺼이 뛰어넘게 만들 우리 가게만의 ‘가치’가 무엇인지 먼저 정의해야 합니다.

어쩌면 ‘어린이 메뉴’라는 이름 자체가 우리가 만든 낡은 경계선일지 모릅니다. 이제 그 선을 지우고, 굶주린 ‘어른이’들의 미묘하고 복잡한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입니다. 그들의 작은 접시 위에, 우리 가게의 가장 큰 기회가 놓여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