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도 AI가? 로스율 1%에 목숨 거는 시대, 카길이 던진 미래의 청사진

정육도 AI가? 로스율 1%에 목숨 거는 시대, 카길이 던진 미래의 청사진

FBK 편집부
작성일: 2025년 6월 25일
수정일: 2025년 6월 25일

사장님, 오늘 정육 작업하면서 '로스율(loss rate)' 얼마나 나오셨습니까

숙련된 발골 장인의 그날 컨디션과 감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수율에 가슴 졸여본 경험, 한두 번이 아닐 겁니다. 고기 한 점, 지방 한 덩이가 전부 돈인 우리 외식업계에서 '수율 관리'는 영원한 숙제와도 같았습니다.

(Photo: Michael Fousert / Unsplash)
(Photo: Michael Fousert / Unsplash)

그런데, 이 숙련공의 '감'과 '손기술'에 의존하던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거대한 신호탄이 터졌습니다. 세계 3대 육류 공급사 '카길(Cargill)'이 약 1,200억 원(9천만 달러)을 투자해 콜로라도 육류 공장을 AI와 자동화 기술로 무장한 '미래의 공장'으로 탈바꿈시킨다는 소식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계 몇 대 들여놓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육류 산업의 패러다임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의 등장이자, 머지않아 대한민국 육가공 및 외식업계가 마주할 현실입니다.

'미래의 공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카길 미래의 공장
(Photo: Cargil 홈페이지)

카길이 선보인 '미래의 공장'의 핵심은 두 가지, 바로 'CarVe 시스템'과 '3D 비전 절단 장치'입니다.

과거 정육사가 소 한 마리를 해체하며 부위별 수율을 머릿속으로 계산했다면, 이제는 AI 시스템인 'CarVe'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절단 방식을 작업자에게 제시합니다.

여기서 1cm만 더 안쪽으로 자르면, 구이용 부위를 500g 더 얻을 수 있습니다와 같은 지시가 데이터 기반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단 1%의 수율 개선이 수억 파운드의 고기를 살려낸다는 그들의 계산은,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갖는지 보여줍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3D 비전 시스템입니다. 작업자가 고깃덩이를 '요람'에 올려두기만 하면, 3D 스캐너가 순식간에 고기의 형태를 스캔해 최적의 절단면을 찾아내고, 로봇팔이 1분에 14번의 속도로 정확하게 뼈와 살을 분리해 냅니다. 과거 작업자가 하루 3,000번씩 톱을 밀어야 했던 위험천만한 고강도 작업이, 이제는 안전하고 정교한 자동화 공정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단순한 '효율'을 넘어 '책임'과 '지속가능성'을 말하다

카길의 이번 투자가 더욱 무섭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Photo: Michael Fousert / Unsplash)
(Photo: Mark Stebnicki / Pexels)

1. 직원의 가치를 재정의하다.

이제 작업자는 더 이상 위험한 톱날 앞에서 단순 반복 노동을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AI의 분석을 이해하고, 로봇을 제어하며, 전체 공정을 관리하는 '고숙련 기술 오퍼레이터'로 역할이 바뀝니다. 이는 극심한 인력난과 산업재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국내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2. '지속가능성'을 숫자로 증명하다.

이 공장은 소 한 마리의 99%를 낭비 없이 자원으로 활용합니다. 가죽은 명품 가방과 자동차 시트가 되고, 나머지 부산물까지 모두 제품화됩니다. 이는 'ESG 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시대에, 기업이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입니다.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대한민국 육류 산업의 미래

그건 미국 대기업 이야기지라며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기술의 핵심인 AI 분석과 자동화 로봇은 무서운 속도로 소형화되고 가격이 저렴해질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 동네 정육점과 식당 주방에도 'AI 정육 관리사'가 도입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때가 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언제까지 숙련공의 고령화와 치솟는 인건비에 한숨만 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가게만의 레시피와 운영 노하우를 '데이터'로 축적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우리 가게만의 '서비스'와 '스토리'는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카길의 '미래 공장'은 단순한 자동화 공장이 아닙니다. '노동 집약적' 산업의 대명사였던 육류 가공업이 어떻게 '스마트 기술 집약적' 산업으로 진화하는지를 보여주는 미래의 청사진입니다. AI가 잡은 칼끝에서, 이제 육류 산업의 미래가 새롭게 재단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