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게, 왜 낡지 않고 단숨에 힙해졌을까?

그 가게, 왜 낡지 않고 단숨에 힙해졌을까?

FBK 편집부
작성일: 2025년 9월 12일
수정일: 2025년 9월 12일

수십 년 노포의 '오래됨'을 Z세대가 열광하는 '힙함'으로 바꾸는 법. 태극당, 곰표의 성공과 트로피카나의 실패에서 배우는 실전 헤리티지 브랜딩 전략.

최근 베트남 호치민에 문을 연 스시집 ‘마키마키’는 전통 스시를 네온사인 가득한 공간에서, 눈앞에서 직접 말고 구워주는 ‘라이브 쇼’로 재해석해 현지 Z세대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출처 : MAKi MAKi

이 영리한 스시집의 사례는 수십 년간 묵묵히 자신의 브랜드를 지켜오신 사장님들께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바로 ‘우리 가게의 ‘오래됨’을 어떻게 Z세대가 열광하는 ‘힙한 경험’으로 재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주 고객층의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젊은 고객들의 발길은 뜸해지는 현실. 우리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이 소중한 가치를 어떻게 새로운 세대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그 구체적인 전략을 국내외 사례를 통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박제된 역사가 아닌, ‘경험하는 콘텐츠’로

사장님,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평생 지켜온 ‘세월’이야말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 어떤 신생 브랜드도 흉내 낼 수 없는 강력한 자산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귀한 자산을 그저 가게 한편에 걸어둔 낡은 액자처럼, ‘박제된 역사’로만 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출처 : Pixels의 joan-germaine작가

Z세대는 더 이상 ‘맛’만으로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기꺼이 투자해 ‘경험’하고, 나아가 자신의 SNS에 ‘기록’할 만한 가치를 찾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Z세대 중 60%는 자신의 외식 경험을 SNS에 공유한다는 데이터는 이 흐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제 음식은 접시에 담겨 나올 때 끝나는 게 아니라, 고객의 스마트폰 갤러리에 저장되고 SNS에 공유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는 곧, 우리 브랜드의 헤리티지(Heritage)를 ‘음식’에서 ‘콘텐츠’로, 매장을 ‘판매 공간’에서 ‘경험의 무대’로 재설계하는 관점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맛은 당연한 기본입니다. 이제는 그 맛에 담긴 사장님의 철학과 스토리를 Z세대의 언어로 보여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지키면서 혁신할 것인가, 이름 빼고 다 바꿀 것인가

이러한 관점의 전환을 통해 성공적으로 부활한 국내 브랜드들의 행보는 우리에게 구체적인 힌트를 줍니다.

자신의 ‘근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았던 브랜드들

출처 : 스마트플레이스(태극당)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은 40년 넘은 샹들리에와 ‘야채빵’, ‘모나카 아이스크림’ 같은 핵심 메뉴는 절대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월’이야말로 자신들의 대체 불가능한 자산임을 정확히 알았던 것이죠. 그 대신 옛 포장지에서 찾아낸 디자인 모티프로 현대적인 굿즈를 만들고, 젊은 브랜드와 협업하며 Z세대에게 ‘낡고 이상하지만 묘하게 끌리는 힙한 곳’으로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70년 전통의 밀가루 회사 ‘곰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브랜드를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그들은 ‘곰’이라는 캐릭터와 복고풍 디자인이라는 핵심 자산을 무기로 ‘곰표 밀맥주’라는 히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인스턴트 커피의 대명사 ‘카누’ 역시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를 열어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을 감각적인 공간 경험으로 풀어냈고, 무려 6만 명이 넘는 젊은 고객들을 매장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이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영리함으로 Z세대와의 접점을 만들어냈습니다.

근본이 흔들릴 때의 과감한 선택

반면, 기존의 콘셉트 자체가 더 이상 시장에서 독보적이지 않을 땐 과감한 파괴가 유일한 답이 되기도 합니다. ‘자연주의’ 콘셉트가 흔해지며 위기를 맞았던 ‘이니스프리’는 ‘이름 빼고 다 바꾼다’는 파격적인 선언과 함께, 순수한 자연 이미지를 ‘도전적이고 강인한 개척자’의 세계관으로 완전히 바꾸며 위기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우리 브랜드의 핵심 가치가 더 이상 차별점을 갖지 못한다고 판단될 때 고려해볼 수 있는 고난도의 전략입니다.

400억짜리 교훈: 버려서는 안 될 것을 버렸을 때

물론 이 길이 항상 성공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브랜드의 심장을 잃어버리는 위험천만한 도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공적인 리브랜딩을 위해서는 ‘변치 않아야 할 브랜드 정체성’과 ‘변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예리한 통찰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스 브랜드 ‘트로피카나’의 사례는 우리에게 400억 원짜리 교훈을 줍니다. 그들은 거액을 들여 패키지를 현대적으로 리뉴얼했지만, 수십 년간 브랜드를 상징했던 ‘오렌지에 빨대가 꽂힌’ 이미지를 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고객들은 더 이상 트로피카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매출은 두 달 만에 20%나 폭락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이전 디자인으로 황급히 돌아와야 했습니다. 의류 브랜드 ‘GAP’ 역시 브랜드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유행하는 서체를 성의 없이 적용했다가 고객들의 엄청난 반발을 사고 6일 만에 백기를 들었죠.

이 뼈아픈 실패 사례들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리브랜딩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브랜드가 쌓아온 가장 강력한 상징, 즉 ‘근본’을 찾아내 새로운 방식으로 매력적이게 보여주는 ‘재해석’의 과정이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장님들은 내일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국 성공의 열쇠는 ‘경험 설계’에 있습니다. 우리 브랜드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고객의 몰입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게의 ‘오래됨’을 ‘힙함’으로 바꾸기 위해,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거창한 계획 대신, 다음 3단계 질문에 답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출처 : Freepik의 snowing 작가

우리 브랜드의 ‘영혼’ 정의하기 (Define)

먼저, 종이 한 장을 꺼내 ‘고객이 우리 가게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 하나는 무엇인가?’를 적어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사장님 브랜드의 ‘영혼’이자 트로피카나가 버렸던, 절대 버려선 안 될 자산입니다.

‘영혼’을 만질 수 있는 ‘경험’으로 변환하기 (Transform)

그 ‘영혼’을 어떻게 하면 고객이 맛보고, 만지고, 사진 찍게 할 수 있습니까? 카누의 팝업스토어처럼, 메뉴판의 글씨체, 직원의 유니폼, 매장 구석의 작은 소품 하나까지, 모든 것이 그 영혼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출처 : Freepik의 jcalvera작가

기꺼이 ‘기록’하고 ‘공유’하게 설계하기 (Design)

마지막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음식을 먹고 나가는 전 과정을 따라 걸어보십시오.


어느 지점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싶어집니까? 그 ‘인증샷 포인트’가 바로 우리 브랜드의 스토리가 세상에 퍼져나가는 시작점입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낡은 것을 새것처럼 포장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평생을 바쳐 지켜온 브랜드의 가치를 다음 세대의 언어로 번역하고, 그들의 삶 속에 자랑스러운 일부로 만들어주는 가장 현대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게를 나서는 젊은 손님의 휴대폰에는 과연 무엇이 담겨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