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존마저 위협받는 글로벌 외식 시장
치열한 외식 시장에서 롱 존 실버스, KFC, 도미노는 고객 데이터와 기존 자산 재해석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글로벌 외식 시장의 경쟁 강도가 다시 한번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단순히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 주요 패스트푸드(QSR) 브랜드들은 각기 다른 해법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해산물 전문점이 로고에서 생선을 지우고 닭을 새기는가 하면, 어떤 브랜드는 30년 전 소스를 다시 불러내고, 또 다른 곳은 파격적인 가격 정책으로 시장을 뒤흔듭니다. 이들의 행보는 겉보기엔 달라 보여도, ‘고객 가치 재정의’와 ‘데이터 기반 성장’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전략적 선택지들입니다.
살아남기 위한 외식 브랜드들의 3가지 생존 공식
1. 롱 존 실버스: 생선 로고를 닭으로 바꾼 이유
해산물 전문점 롱 존 실버스(Long John Silver's)의 변신은 시장이 얼마나 유연한 사고를 요구하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들은 최근 브랜드의 상징이던 생선 일러스트를 과감히 닭 이미지로 교체하고 ‘치킨 + 해산물(CHICKEN + SEAFOOD)’이라는 문구를 새긴 로고를 공개했습니다. 수십 년간 쌓아온 ‘해산물’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비트는 파격입니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고객 데이터가 있습니다. 롱 존 실버스의 마케팅 및 혁신 담당 수석 부사장 크리스토퍼 코딜(Christopher Caudill)은 "고객들로부터 우리 치킨이 '아는 사람만 아는 최고의 메뉴'라는 이야기를 수년간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브랜드의 대표 메뉴인 생선튀김만큼 강력한 잠재력을 가진 ‘치킨 플랭크(Chicken Planks®)’를 더 이상 숨겨진 카드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실제로 루이빌 플래그십 매장에서 진행한 내슈빌 핫 치킨(Nashville Hot Chicken)과 치킨 랩 테스트는 경쟁사를 압도하는 맛이라는 폭발적 반응을 얻었습니다.
롱 존 실버스는 해산물이 여전히 브랜드의 핵심임을 강조하면서도, 빠르게 성장하는 치킨 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가장 강력한 자산인 ‘브랜드’ 자체를 재정의했습니다. 이는 기존 고객을 유지하면서 신규 고객층을 끌어들이려는 정교한 메뉴 다각화 전략입니다. 우리 브랜드의 메뉴판에도 고객들은 알고 있지만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숨은 강자’는 없는지 점검해 볼 시점입니다.
2. KFC: 30년 전 소스로 고객의 기억을 소환하다
신제품과 새로운 시장 개척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닙니다. KFC는 고객의 ‘기억’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브랜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1990년대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리지널 허니 BBQ 소스(Original Honey BBQ Sauce)’의 재출시가 바로 그 사례입니다.

이 결정은 팬들의 오랜 요청에 대한 응답입니다. 재출시 청원, 수천 건의 소셜미디어 언급, 심지어 팬들이 직접 개발한 모방 레시피까지 등장할 정도로 강력한 수요가 존재했습니다. KFC는 이 요청을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상 처음으로 치킨을 소스에 완전히 버무려주는 ‘버무림’ 옵션을 추가하며 경험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여기에 ‘KFC 치킨 샌드위치(KFC Chicken Sandwich)’를 90년대 가격인 3.99달러에 한정 판매하는 프로모션을 결합해, 향수와 가치를 동시에 자극하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신규 R&D 투자 없이, 기존 브랜드 자산을 활용해 충성 고객을 결집시키고 새로운 화제성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3. 도미노피자: 데이터로 설계한 역대급 할인 전략
도미노피자는 2025년 3분기, 6분기 만에 최대치인 5.2%의 미국 동일 매장 매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이 놀라운 성장의 중심에는 ‘역대급 최고 딜’이라 불린 9.99달러 피자 프로모션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가격을 낮춘 것이 성공의 전부는 아닙니다. 도미노의 진짜 저력은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성장 설계에 있습니다.
도미노는 우버이츠와 도어대시라는 두 거대 배달 앱 플랫폼과의 제휴를 통해 새로운 고객층에 효과적으로 도달했습니다. 러셀 와이너(Russell Weiner) CEO는 우버이츠가 도심 지역과 고소득 고객층에서, 도어대시는 교외 지역에서 더 강세를 보이는 등 각 플랫폼의 고객 특성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이는 배달 앱을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고객 세분화 및 타겟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규모가 더 큰 도어대시를 통한 성장을 기대하는 등, 플랫폼별 특성에 맞춘 전략적 로드맵을 그리고 있습니다.
9.99달러 프로모션은 가맹점주들이 본사에 연장을 요청할 정도로 수익성이 높았습니다. 와이너 CEO는 "막강한 미디어 영향력과 구매력을 바탕으로 대량 주문을 유도해, 가맹점에게 수익성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본사의 강력한 구매력과 효율적인 운영 시스템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모델입니다.

더 주목할 점은 프로모션 이후의 전략입니다. 도미노는 ‘부스트 위크(Boost Weeks)’, ‘이머전시 피자(Emergency Pizza)’ 등 다양한 가치 제안을 연이어 제시하며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합니다. 일회성 할인으로 고객을 유인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혜택과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가격 민감도를 낮추고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여기에 ‘파마산 스터프드 크러스트 피자(Parmesan Stuffed Crust Pizza)’와 같은 성공적인 신메뉴 출시, 운영 복잡성을 줄이고 고객 선호도를 높인 ‘브레드 바이츠(Bread Bites)’로의 메뉴 개편 등 기본기 강화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위기 속 성장, 3가지 실행 전략
롱 존 실버스, KFC, 도미노의 사례는 각기 다른 전략처럼 보이지만, 결국 ‘현재 우리가 가진 자산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극대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이들의 행보는 한국 외식 브랜드를 운영하는 우리에게 세 가지 구체적인 실행 방향을 제시합니다.
- ‘숨겨진 메뉴’의 잠재력을 재평가하라: 롱 존 실버스처럼, 고객의 꾸준한 피드백이 있지만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던 메뉴가 있다면 과감히 주력으로 키워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으로 진입하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교두보가 될 수 있습니다.
- ‘사라진 메뉴’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라: KFC의 사례는 잘 만든 과거의 유산이 얼마나 강력한 마케팅 자산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 단종되었지만 고객들이 꾸준히 그리워하는 메뉴가 있다면, 한정판 재출시를 통해 충성 고객을 위한 축제를 열어주고 새로운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 ‘가치 제안’을 시스템으로 설계하라: 도미노처럼, 단발성 할인이 아닌 연간 계획에 따른 체계적인 프로모션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배달 앱 파트너십, 로열티 프로그램, 신메뉴 출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고객이 어떤 경로로 우리 브랜드를 만나든 일관되게 높은 가치를 경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맹점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것은 시스템 지속의 핵심 조건입니다.
시장은 언제나 어렵지만, 데이터를 통해 고객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과감한 실행으로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브랜드는 위기 속에서도 반드시 성장 동력을 찾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