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만 2천 원 팬케이크에 5시간 대기, 왜일까?
일본 레트로 식당, 중국 1.2만원 전병 5시간 대기! F&B 공간이 '경험 콘텐츠'로 진화하며 고객 체류 시간 및 매출 증대를 이끄는 미래 전략을 분석합니다.
일본 나고야역 1번 승강장에 기간 한정 선술집이 문을 열고, 중국 청두에서는 1만 2천 원짜리 전병을 사기 위해 5시간 넘게 줄을 선다. 영국 교외의 한 아울렛은 20년 된 푸드코트를 전면 교체하며 유명 레스토랑을 유치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현상들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식음료 공간이 더 이상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강력한 경험 콘텐츠를 제공하는 목적지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쇼와 100년, 백화점과 기차역을 채운 복고의 힘
2025년 쇼와(昭和) 100년을 맞이한 일본 유통업계가 ‘쇼와 레트로(昭和レトロ)’를 전면에 내세웠다.

나고야 스테이션 개발 주식회사(名古屋ステーション開発株式会社)는 2025년 11월 12일부터 나고야역 1번 승강장 유휴 공간에 ‘레트로 대중 선술집 「옛날 야바톤(昔の矢場とん)」’을 한시적으로 운영한다. 이곳에서는 브랜드 초창기 메뉴였던 꼬치카츠, 미소 오뎅 등을 선보이며 기차역이라는 특수한 공간과 결합된 독특한 경험을 제공한다.
백화점 역시 이 흐름에 동참했다. 한큐(阪急) 백화점과 한신(阪神) 백화점 우메다 본점은 11월 1일부터 18일간 ‘쇼와 100년 레트로 미식 축제’를 공동 개최한다.

대표적인 쇼와 시대 디저트인 푸딩 아라모드(プリンアラモード)부터 복고풍 고래고기 요리, 옛날식 카레빵까지 추억의 음식을 통해 식품관을 하나의 거대한 축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전략은 40~50대에게는 향수를,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하고 ‘힙(Hip)’한 매력으로 작용하며 모든 연령대를 끌어모으는 힘을 발휘한다. 단순한 메뉴의 복원을 넘어, 브랜드의 헤리티지(Heritage)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이자 공간 자체를 콘텐츠로 만드는 전략이다. 복합 상업 시설들은 이를 통해 방문객 유치는 물론 체류 시간을 극적으로 늘리는 효과를 보고 있다.
"낡은 푸드코트"의 종말, 캐주얼 다이닝으로 채워진 아울렛

공간 경험의 중요성은 영국에서도 확인된다. 이스트 미들랜즈 디자이너 아울렛(East Midlands Designer Outlet)은 약 20년간 운영된 ‘낡은(outdated)’ 푸드코트의 대대적인 재활성화를 단행했다. 과거 패스트푸드 중심의 기능적 공간에서 탈피하여, 방문객의 쇼핑 경험을 향상시키는 고품질 다이닝 공간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삼았다.
리뉴얼된 공간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바피아노(Vapiano)가 약 100석 규모로 새롭게 입점했으며, 기존의 피자 익스프레스(Pizza Express), 와가마마(Wagamama) 같은 인기 캐주얼 다이닝 브랜드와 시너지를 창출한다. 이는 복합 상업 시설 내 F&B 공간이 더 이상 쇼핑의 부속 시설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객을 유인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품질 높은 다이닝 경험은 고객 만족도를 높이고, 자연스럽게 시설 내 체류 시간 증가와 소비 확대로 이어진다.
65위안짜리 팬케이크에 5시간 대기, '정서적 가치'에 지갑 여는 Z세대
중국 청두에서는 ‘95허우(1995년 이후 출생자)’ 미술 전공자가 운영하는 팬케이크 노점이 시장의 상식을 뒤흔들고 있다.
일반 팬케이크 가격의 8배에 달하는 최고 65위안(약 1만 2천 원)임에도, 5시간 이상 대기해야만 구매할 수 있다. 고객이 요청하는 만화 캐릭터를 즉석에서 그려주는 이 팬케이크은 단순한 음식이 아닌 ‘먹는 예술 작품’이자 ‘개인 맞춤형 굿즈(Goods)’로 소비된다.
이 현상의 중심에는 Z세대의 소비 키워드인 ‘정서적 가치(情緒價値)’가 있다. 이들은 기능적 가치를 넘어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경험에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한다. 미술 전공자의 전문성을 활용해 음식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인기 IP(지식 재산)를 접목해 ‘먹을 수 있는 굿즈’로 포지셔닝한 전략이 젊은 세대의 팬덤을 구축한 것이다. 시각적으로 독특한 제품은 샤오홍슈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확산되며 막대한 바이럴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제 우리의 공간은 '콘텐츠'를 팔아야 한다
일본의 쇼와 레트로, 영국의 몰 다이닝 혁신, 중국의 아트 팬케이크 열풍은 F&B 공간의 미래가 ‘콘텐츠’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음식의 맛은 기본이며, 어떤 스토리를 담고 어떤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우리의 복합 상업 시설 내 F&B 공간도 단순한 식사 장소가 아닌, 특정 테마가 살아있는 ‘콘텐츠 몰(Contents Mall)’로 진화해야 한다.

가령 1980년대 한국의 경양식집을 재현한 공간에서 그 시절 음악을 들으며 식사하는 경험을 제공하거나, 고객이 태블릿으로 직접 디자인한 그림을 라떼 아트로 구현해주는 ‘디지털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다. F&B 공간의 경험 가치를 극대화하고, AR 포토존이나 숏폼 챌린지 같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공간은 더 이상 음식을 진열하는 곳이 아니라,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고 즐거운 기억을 판매하는 무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