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와 쇼핑을 한번에? 중국을 휩쓴 '이 매장'의 정체는?

식사와 쇼핑을 한번에? 중국을 휩쓴 '이 매장'의 정체는?

FBK 편집부
작성일: 2025년 12월 30일
수정일: 2025년 12월 30일

자동화 기술을 도입한 '그로서란트'가 새로운 외식 트렌드로 부상 중이다. 1만 개 매장을 돌파하며 10분 내 요리를 제공, 바쁜 직장인에게 시간과 맛을 모두 선사한다.

식사와 쇼핑의 경계가 무너질 때

외식과 리테일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식(食) 공급망을 재편하는 '그로서란트(Grocerant)' 모델이 급부상하고 있다. 단순히 식재료를 판매하던 과거의 마트를 넘어, 쇼핑과 식사, 심지어 사교까지 결합된 통합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집에서 요리하기 위해 장을 보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장을 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식사까지 해결하는, 훨씬 더 즉각적이고 편리한 경험을 원한다.

이러한 변화의 단초는 중국 시안의 한 '커뮤니티 마트'에서도 발견된다. 시안농업투자그룹이 선보인 이 매장은 공간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즉석에서 조리한 음식을 파는 '이웃 식당'으로, 다른 한쪽은 신선 농산물을 판매하는 '커뮤니티 채소 가게'로 운영된다. 이는 ‘먼 거리의 장보기, 번거로운 조리, 비싼 외식비’라는 지역 주민의 3대 고충을 정면으로 겨냥한 전략으로, 시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로봇 셰프가 만드는 '미래형 동네 주방'의 등장

출처 : 锅圈小炒

단순한 공간 결합을 넘어, 기술은 그로서란트 모델을 상상 이상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훠궈·바비큐 식자재 유통 공룡인 궈취안식품(锅圈食汇)은 '궈취안샤오차오(锅圈小炒)'라는 이름 아래 '커뮤니티 중앙 주방'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2026년 1월 정저우에 첫선을 보일 이 모델은 매장 내 식사 공간이 없다. 대신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주방의 로봇이 즉석에서 요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완전 자동화 시스템이다. 놀라운 효율성이다. 지능형 볶음 기계 한 대는 가장 빠를 경우 2~3분 만에 요리 하나를 완성하며, 두 대를 동시에 가동하면 10분 안에 네 가지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출처 : 锅圈食汇

이 모델의 심장은 거대한 공급망과 자동화 기술의 결합에 있다. 궈취안은 중국 전역의 19개 디지털 중앙 창고와 스마트 콜드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식자재를 표준화된 상태로 공급한다. 로봇은 이 식자재를 정교하게 짜인 레시피(SOP)에 따라 조리하기만 하면 된다. 어느 매장에서 주문하든 항상 동일한 맛과 품질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궈취안은 2025년 8월, 지능형 볶음 기계 개발사 '슝먀오다스'에 수천만 위안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실적으로 증명된다. 2025년 3분기 궈취안의 예상 매출은 약 18억 5,000만 위안에서 20억 5,000만 위안(약 3,515억~3,895억 원) 사이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3.6%에서 25.8%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2025년 9월 말 기준, 총 매장 수는 10,761개에 달한다.

누가 이 새로운 식사법에 열광하는가

그로서란트 모델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고객은 명확하다. 바로 1, 2선 도시에 거주하는 25~35세의 젊은 직장인이다. 이들은 시간과 품질을 무엇보다 중시하며, 건강한 식사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세대다. 바쁜 업무에 치여 직접 요리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이들에게, 전문점 수준의 맛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그로서란트는 완벽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일일 신선' 채소, 유명 셰프와 협업한 간편식, 1인용 소포장 메뉴 등이 이들을 공략하는 대표적인 무기다.

허마셴셩(盒马鲜生)은 한발 더 나아가 매장 자체를 물류 창고로 활용하는 '점포-창고 일체형' 모델을 통해 온라인 주문 시 30분 내 배송이라는 경이로운 속도를 구현하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장밋빛 전망 뒤에 숨은 운영의 딜레마

하지만 이 혁신적인 모델이 언제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홀푸드마켓의 핫바(Hot Bar) 사례는 그 이면에 숨겨진 복잡한 운영의 난제를 드러낸다. 홀푸드의 핫바는 모든 음식을 무게 단위로 판매하는데, 1파운드(약 450g)당 11.99달러(약 16,000원)라는 가격은 쌀밥이나 감자처럼 밀도가 높은 음식을 담을 경우 소비자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계산서로 돌아온다.

출처 : Pexels의 TBD Traveller

더 큰 문제는 품질 관리다. 2017년 이후 홀푸드는 매장 주방에서 직접 조리하는 대신 외부 업체가 만든 음식을 데워서 파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결정은 비용 효율성을 높였을지 모르지만, 음식의 신선도와 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품질 저하 논란을 낳았다. 복잡한 운영 방식과 높은 초기 투자 비용 역시 이 시장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요소로, 그로서란트의 미래가 마냥 장밋빛만은 아님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