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조 원 예산 증발... 미국판 기초 생계비 중단 초읽기
미국 SNAP 중단 위기는 4천만 명의 생계와 푸드 뱅크를 넘어 F&B 산업 전체를 위협한다. 이 사태는 공공 지원이 F&B 공급망 안정의 핵심 인프라임을 보여준다.
미국 저소득층의 식생활을 책임지는 핵심적인 공공 제도가 의회 예산 문제로 중단될 위기에 처하면서, F&B 산업 전체가 거대한 불확실성 앞에 놓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넘어, 식료품 소매업체부터 공급망, 나아가 지역 경제까지 뒤흔드는 거대한 나비효과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보충 영양 지원 프로그램(SNAP, 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은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풀자면, 저소득층에게 지급되는 일종의 ‘식품 구매 바우처’ 제도입니다. 2024년 기준 4,170만 명의 미국인이 이 혜택에 의존하고 있으며, 연방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 연간 998억 달러(약 13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왔죠. 2023년 기준으로 수혜자는 성인(42%), 아동(39%), 노인(19%)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분포해 있어, 명실상부한 미국의 핵심 사회 안전망으로 기능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시스템이 멈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번 사태는 그 질문에 대한 냉정한 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계에 부딪힌 자선 시스템, 드러난 공공 제도의 무게
SNAP 혜택 지급이 불투명해지자 가장 먼저 비상이 걸린 곳은 기부 식품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푸드 뱅크’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마지막에 기댈 수 있는 식량 지원의 최전선이죠. 그러나 푸드 뱅크의 역할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푸드 뱅크가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할 때, SNAP은 아홉 끼를 책임지는 구조입니다. 규모 면에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죠. 그레이터 보스턴 푸드 뱅크의 캐서린 다마토 CEO 역시 자선 식품 네트워크가 SNAP을 대체하는 것은 재정적으로나 물류적으로 불가능한 과제라고 지적하며, 공공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미 현장에서는 수요 폭증 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이다호주의 일부 푸드 뱅크는 최근 일주일 만에 수요가 27~30% 급증했으며, 식품 지원 정보를 안내하는 웹사이트의 트래픽은 전년 대비 6배나 치솟았습니다. 이는 SNAP의 공백이 곧바로 민간 자선 시스템의 과부하로 이어진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복지를 넘어 F&B 산업으로 번지는 ‘연쇄 충격’
이번 사태를 단순한 복지 문제로만 본다면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SNAP은 수혜자뿐만 아니라, 이들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F&B 산업 생태계 전체를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마트 진열대에서 농장까지, 흔들리는 공급망
FMI 식품산업협회의 제니퍼 해처 최고 공공 정책 책임자는 정부 지원의 축이 무너질 때 발생하는 연쇄 효과를 경고합니다. 고객의 구매력이 급감하면, 이는 곧바로 소매점의 재고 관리, 공급업체 주문량 축소, 매장 인력 운용 차질로 이어집니다. 결국 지역 경제의 세수 기반까지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이미 현장의 식료품점들은 소비 위축에 대비해 재고를 다시 계산하고 공급업체에 대한 주문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등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여기에 최소 12개 주에서 추진 중인 ‘무가당(no-sweets)’ 정책은 소매업체에 약 2조 1천억 원에 달하는 추가 시스템 개편 비용 부담까지 안길 수 있어, 업계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민간의 대응, 그리고 명확한 한계
위기 상황에 대응해 민간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식료품 배송 플랫폼 인스타카트는 전자 바우처 카드(EBT)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500만 달러(약 65억 원) 규모의 긴급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잉여 식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플래시푸드’와 같은 앱의 다운로드 수가 급증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단기적인 충격을 완화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푸드 뱅크 전체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양의 9배에 달하는 SNAP의 역할을 민간 기업 몇 곳의 프로모션이나 비영리단체의 노력으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번 사태는 공공 식품 지원 시스템이 단순한 시혜적 복지를 넘어, F&B 산업의 수요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공급망 전체의 안정을 유지하는 핵심 인프라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 국가의 정책 결정이 식료품점의 재고부터 농가의 생산 계획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F&B 업계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시사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