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의 '두 얼굴 경제': 증시는 뜨거운데, 왜 동네 식당은 곡소리 나나?
홍콩의 금융시장은 지금 축제 분위기다. 중국의 테크 기업들이 홍콩을 발판 삼아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항셍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금융 및 IT 서비스업 매출은 전년 대비 각각 32.5%, 60.2% 폭증했다. 숫자로만 보면 홍콩 경제는 화려하게 부활하는 듯 보인다.하지만 카메라를 금융 중심가에서 서민들의 골목상권으로 조금만 돌려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14개월 연속 하락한 소매 판매 지표, 전년 동기 대비 0.6% 감소한 식당 총매출. 특히 홍콩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중식당 매출은 4.9%나 급감하며 직격탄을 맞았다. 금융시장의 온기는커녕, 자영업 시장은 시베리아 벌판 같은 한파에 떨고 있다.
이 기이한 '두 얼굴의 경제'. 이는 더 이상 홍콩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머지않아 대한민국 자영업 시장이 마주할 수 있는, 섬뜩할 정도로 유사한 미래의 경고등이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왜 내수 시장은 붕괴하는가?
홍콩의 내수 붕괴를 이끈 주범은 역설적으로 '교통의 발달과 경제 통합'이다. 고속철도와 거대한 다리(강주아오 대교)가 홍콩과 중국 본토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어버리자, 홍콩 시민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더 다양하고 푸짐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근 본토 도시로의 '소비 원정'이 일상화된 것이다. 홍콩의 중식당들은 가격으로도, 다양성으로도 본토의 경쟁자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KTX와 저가 항공이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고, 엔저 현상에 일본으로의 '쇼핑 관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모습과 정확히 겹친다. 소비자는 이제 국경과 지역을 넘어 '가성비'와 '가심비'가 높은 곳으로 지갑을 들고 이동한다. 국내에서 아등바등 버티는 자영업자들에게는 매장 밖의 잠재 고객이 아니라, 아예 국경 밖의 경쟁자와 싸워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홍콩의 데이터 속에서 발견된다. 중식당이 몰락하는 와중에도 패스트푸드점(1.9% 증가)과 비(非)중식 레스토랑(2.4% 증가)은 소폭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중간한 가격과 맛의 '전통 강자'는 더 싸고 다양한 외부 경쟁자에 의해 대체되지만, 확고한 브랜드나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곳은 살아남는다는 증거다.
'가격 인하'라는 진통제, '혁신'이라는 치료제

생존의 위기에 몰린 홍콩 자영업자들은 결국 '가격'을 내리기 시작했다. 상가 임대료는 하락하고, 저렴한 2가지 메뉴 세트가 등장했다. 한 대형 패스트푸드 체인은 대표 메뉴를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는 마케팅 쇼를 벌이며 파격적인 할인 쿠폰을 뿌렸고, 순식간에 동이 났다.
하지만 이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일 뿐, 근본적인 치료제가 될 수는 없다. 가격 경쟁은 결국 모두가 피 흘리는 '치킨 게임'으로 귀결될 뿐이다. 홍콩의 사례는 명확히 말한다. 이 고통스럽고 긴 침체의 터널을 빠져나갈 유일한 비상구는 '혁신'이라고.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 자영업 시장은 이 홍콩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첫째, '가성비'의 함정에서 벗어나 '대체 불가능성'을 구축해야 한다.
더 싼 제품은 언제나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제는 "왜 굳이 더 비싼 돈을 내고 당신의 가게를 찾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것이 압도적인 맛이든, 독보적인 서비스 경험이든, 혹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링이든, 우리 가게만의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둘째, '상품'이 아닌 '경험'과 '공간'을 재설계해야 한다.
홍콩에서 주류세 인하 효과 덕에 유일하게 6.5% 성장한 '바(Bar)' 시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술을 마시기 위해 바를 찾지 않는다. 분위기와 경험을 소비하기 위해 간다. 우리 가게는 그저 음식을 먹는 장소인가, 아니면 머물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특별한 공간'인가? 배달과 포장이 일상화된 시대에, 오프라인 매장이 제공해야 할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셋째, 낡은 성공 공식과의 과감한 결별이 필요하다.
정부는 소비 쿠폰 같은 단기 부양책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이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규제 완화, R&D 지원 등)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자영업자 스스로도 "예전엔 이렇게 해서 잘됐는데"라는 과거의 성공 경험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용기가 필요하다.
홍콩의 오늘은 우리의 내일이 될 수 있다. 금융과 수출 지표가 장밋빛으로 빛나는 동안, 골목 상권의 비명은 묻힐 수 있다.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홍콩의 사례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당장, 우리 가게의 생존을 위한 고통스러운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