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슐랭 3스타의 굴욕, 5만 원짜리 '생존 세트' 출시
경기 불황으로 재편되는 중국 외식 시장. ‘핑티 소비’ 트렌드 속에서 압도적 ‘가성비 맛집’만이 살아남는 생존 전략을 분석한다.
지갑은 닫혀도, 품위는 지키고 싶다

중국 F&B 시장에 ‘핑티(平替)’, 즉 비싼 브랜드 대신 저렴한 대체품을 찾는 소비 트렌드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경기 둔화와 치솟는 청년 실업률이 맞물리며 시작된 소비 하향(consumption downgrading) 현상은 외식 시장의 지형도를 뿌리부터 뒤흔든다. 상하이의 경우, 단적인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1인당 평균 소비액이 500위안(약 9만 5천 원) 이상인 고급 레스토랑 수는 지난 5년간 2,700여 개에서 1,300여 개로 반 토막 났다. 고가 외식 시장의 붕괴를 보여주는 서늘한 지표다.
미슐랭 3스타의 생존법: ‘가난한 자를 위한 세트’
변화의 칼날은 최상위 포식자도 비껴가지 않았다. 베이징 지점이 중국 최초로 미슐랭 3스타 영예를 안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신룽지(Xinrongji)마저 생존을 위한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브랜드 30년 역사상 가장 낮은 가격인 288위안(약 5만 5천 원)짜리 점심 세트를 출시한 것이다. 소셜미디어에서 ‘가난한 자를 위한 세트’라 불리는 이 메뉴는 평일 점심에만 한정 판매되며, 견고했던 진입 장벽을 스스로 허물어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절박한 시도다.

시장의 냉기는 와인잔에서 가장 먼저 느껴졌다. 한 와인 유통업체 임원은 “기업 접대 예산이 급감하며 고급 레스토랑의 핵심 수입원이던 와인 판매량이 곤두박질쳤다”고 토로한다. 신룽지의 가격 인하는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변화된 시장 수요에 적응하려는, 파인다이닝 업계의 깊은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다.
‘저렴한 존엄’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하다

고가 시장이 얼어붙는 동안, 중저가 시장의 경쟁은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 특히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며 단련된 사이제리야(Saizeriya), 스시로(Sushiro) 같은 저가 브랜드들의 약진이 눈부시다. 이들은 철저한 공급망 관리와 극단적인 표준화로 낮은 가격에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 즉 ‘저렴한 존엄(Affordable Dignity)’을 제공하며 중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중국식 해법: 하이디라오의 스시 도전
중국 토종 기업들도 반격에 나섰다. 중국 최대 훠궈 기업 하이디라오는 사내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붉은 석류 계획’을 통해 저가 스시 브랜드 ‘루이 스시(Ru Yi Sushi)’를 선보였다. 2025년 8월 항저우에 문을 연 1호점은 주말 회전율(翻台率) 8회, 하루 방문객 1,000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스시로의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하되, 하이디라오의 막강한 공급망을 활용해 가격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전략이 주효했다. 루이 스시의 공급망 책임자는 “본사의 구매력을 바탕으로 현지 공급업체를 직접 관리해 중간 비용을 없앴고, 10~15위안 가격대의 안정적인 품질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양극화 시대, ‘어중간함’은 설 자리가 없다
현재 중국 외식 시장은 어중간한 가격대의 미들급 브랜드가 사라지고, 압도적인 가성비의 저가 브랜드와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파는 하이엔드 브랜드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홍콩 항셍대학교의 데이비드 웡 교수의 분석처럼, 소비자들은 돈을 아끼면서도 품위 있는 식사를 원한다.
이는 단순히 가격만 낮춘다고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가격 경쟁력의 이면에는 반드시 압도적인 공급망 효율화가 버티고 있어야만 한다. ‘싸지만 가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만이 잔혹한 시장 재편 과정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