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컵 팔린 곰탕, 대체 종이컵에 뭘 담았길래?

500만 컵 팔린 곰탕, 대체 종이컵에 뭘 담았길래?

FBK 편집부
작성일: 2026년 2월 5일
수정일: 2026년 2월 5일

뉴욕 본 브로스가 연 매출 1,300억을 달성한 비결은 ‘카테고리 재정의’입니다. 이 전략을 통해 우리 곰탕도 단순 식사가 아닌 새로운 가치를 가진 상품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출처 : Freepik의 EyeEm

국물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팔았다

2014년 뉴욕, 제임스 비어드 수상 경력의 셰프 마르코 카노라는 자신의 레스토랑 창문에 작은 테이크아웃 코너를 엽니다. 메뉴는 단 하나, 뼈 육수(본 브로스). 그런데 그는 뚝배기가 아닌 종이컵에 국물을 담아 팔았습니다. 마치 아침의 커피처럼 말이죠. ‘브로도(Brodo)’라는 이름의 이 작은 가게는 돌풍을 일으키며 누적 500만 컵이라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기록합니다.

출처 : Kettle & Fire

같은 시기, 케틀앤파이어(Kettle & Fire)는 더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들은 본 브로스를 우유팩 같은 상온 보관(shelf-stable) 용기에 담아 대형마트 진열대에 올렸습니다. 냉동 코너 구석에 박혀 있던 곰탕 같은 식재료를 소비자들이 매일 오가는 상온 수프 코너의 어엿한 상품으로 끌어낸 것입니다. 접근성의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이들의 과감한 도전은 연 매출 1억 달러(약 1,300억 원)라는 놀라운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두 전략의 본질은 같습니다. 주방의 낡은 식재료였던 ‘뼈 국물’을 길거리의 힙한 건강 음료로, 혹은 선반 위의 편리한 CPG(소비재) 상품으로 완벽하게 신분 상승시킨 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국물을 판 것이 아니었습니다.

5천 원짜리 ‘곰탕’은 비싸고, 5천 원짜리 ‘건강음료’는 싸다?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전략은 어떻게 소비자의 지갑을 열었을까요? 답은 고객의 머릿속, 즉 행동경제학에 있습니다.

출처 : Kettle & Fire

첫 번째 무기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였습니다. 똑같은 곰탕도 뚝배기에 담으면 ‘든든한 식사’지만 세련된 종이컵에 담으면 ‘활력을 주는 에너지 드링크’가 됩니다. ‘브로도’는 종이컵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본 브로스의 가치를 식사에서 건강 음료로 완벽하게 재설계했습니다. ‘식사 대용’이라는 무거운 프레임을 벗고 ‘커피 대용’이라는 가벼운 프레임으로 갈아탄 순간 게임의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두 번째 무기는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를 정조준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돈에 보이지 않는 꼬리표를 붙입니다. ‘식료품비’ 5천 원에는 인색하지만 ‘나를 위한 스타벅스 커피값’ 5천 원에는 관대합니다. 본 브로스가 ‘마시는 음료’ 카테고리로 자리를 옮기자 고객들은 깐깐하게 잠가뒀던 ‘식료품 예산’이 아닌 너그러운 ‘기분 전환용 음료 예산’으로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5천 원짜리 ‘국물’은 외면받았지만 5천 원짜리 ‘건강 음료’는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래서, 곰탕을 종이컵에? 정답은 다른 곳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당장 곰탕을 종이컵에 담아 팔아야 할까요? 천만에요. 한국 시장에서 ‘국물=식사’라는 인식은 신념에 가깝습니다. 길에서 곰탕을 마시는 어색한 그림은 실패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미국 사례의 겉모습이 아닌 그 알맹이를 봐야 합니다.

핵심은 ‘카테고리 재정의’라는 아이디어 그 자체입니다. CJ 비비고 사골곰탕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지 않았냐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대기업과 똑같이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정면 승부하는 것은 자본력에서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보지 않는 새로운 운동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출처 : Freepik

사장님 가게의 비법이 담긴 곰탕, 이걸 레토르트 파우치에 담는 겁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름표를 붙이는 거죠. ‘야근 후 허기를 달래는 직장인의 프리미엄 영양 수프’, ‘운동 끝나고 마시는 완벽한 단백질 보충제’, 혹은 ‘기력 쇠한 부모님을 위한 고급 건강 선물 세트’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곰탕’이 아닙니다. 특정 고객의 특정 상황을 해결해주는 솔루션입니다. ‘마시는 음료’가 아닌 ‘떠먹는 간편 보양식’이라는 우리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 이것이 본질입니다.

사장님, 이제 당신의 무기를 만들 차례입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입니다.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십시오.

당신의 곰탕을 무엇이라 다시 부를 것인가?

출처 : Freepik의 burgermin

‘든든한 한 끼’, ‘전통의 맛’ 같은 뻔한 수식어를 버리십시오. 고객은 그런 말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습니다. ‘아침을 깨우는 영양 수프’, ‘면역력을 위한 콜라겐 부스터’처럼 고객의 특정 순간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한 문장을 찾아내야 합니다. 당신의 제품이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는지 명확히 정의해야 합니다.

어떤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할 것인가?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욕심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타겟 고객에 맞는 1인용 소용량 패키지를 당장 기획하고 테스트하십시오. 야근하는 30대 직장인입니까? 아침 거르는 10대 수험생입니까? 캠핑을 즐기는 40대 가장입니까? 고객이 명확해지면 제품의 형태와 용량, 가격까지 모든 것이 명확해집니다.

어떻게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

‘맛있다’, ‘정성껏 만들었다’는 말은 이제 힘이 없습니다. ‘국내산 한우 뼈’, ‘12시간의 정성’ 같은 당연한 소리 대신 고객이 얻는 객관적인 효능을 숫자로 보여주십시오. ‘콜라겐 5,000mg 함유’, ‘나트륨 30% 감소’, ‘단백질 15g 보충’처럼 말입니다. 신뢰는 구체적인 숫자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