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밥을 ‘말지’ 않는다는 것: 한 끼 식사에 담긴 치밀한 경험 설계
여기, 김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던 그 김밥이 아니다. 검은 김 위로 하얀 밥, 그 위에 잘게 썬 참치마요와 단무지, 계란 등 다채로운 재료들이 흩뿌려지듯 층층이 쌓여 있다. 완성되지 않은 듯한 이 기묘한 모습. ‘피리카라 김밥 츠츠미’라는 이름의 이 음식은, 김밥은 반드시 돌돌 말아야 한다는 오랜 관습에 유쾌한 반기를 든다.
얼핏 보면 단순한 아이디어 상품처럼 보이지만, 이 ‘말지 않은 김밥’ 속에는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고 오감을 장악하며, 심지어 주방의 동선까지 계산한 치밀한 전략이 숨어있다. 이것은 음식이 아니라, 한 편의 잘 짜인 ‘경험 디자인’이다.
찰나의 완성, 뇌를 깨우는 ‘아하! 모먼트’
이 음식의 백미는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는 순간에 있다. 빳빳한 김의 양 끝을 들어 올리면, 흩어져 있던 재료들이 자연스럽게 감싸 안기며 비로소 한입 크기의 ‘김밥’이 완성된다. 소비자는 수동적인 섭취자에서, 자신의 마지막 한 입을 완성하는 ‘참여자’가 된다.
이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참여의 순간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아하! 모먼트(Aha! Moment)’를 유발한다.
분리된 요소(김, 밥, 재료)를 보고 ‘김밥이 될 것’이라 예측은 하지만, 그 형태는 낯설다. 이 인지적 불일치가 만든 긴장감은, 내 손으로 직접 김밥을 완성하는 순간 해소되며 뇌에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익숙한 음식을 먹는 무의식적 행위가, 낯선 형태를 마주하고 해결하는 능동적이고 즐거운 게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조리과학이 증명하는 ‘바삭함’이라는 최고의 가치
왜 말지 않았을까? 그 답은 ‘식감’에 있다. 전통적인 김밥의 가장 큰 숙제는 밥의 수분으로 인해 눅눅해지는 김이다. 아무리 좋은 김을 써도 시간이 지나면 그 운명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메뉴는 먹기 직전, 바로 그 찰나에 김과 밥이 만나게 함으로써 김 본연의 ‘바삭함’을 극대화한다.
이것은 정교한 다중감각 설계의 결과다.
시각: 층층이 쌓인 재료는 그 자체로 선명한 시각적 유혹이다. 무엇이 들었는지 훤히 보여주며 맛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을 동시에 증폭시킨다.
촉각: 젓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빳빳한 김의 질감과 부드러운 밥, 아삭한 재료의 대비는 먹기 전부터 즐거움을 준다.
청각: 마침내 입안에서 터지는 ‘바삭’하는 경쾌한 소리는, 맛의 경험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소리 없는 김밥과 소리 내는 김밥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문화의 혼종, 비즈니스의 효율을 동시에 잡다
이 음식은 일본의 ‘군함말이(軍艦巻き)’ 형태에 한국 ‘김밥’의 내용물을 채워 넣은 창조적 재해석의 산물이다. 익숙한 두 문화 코드를 영리하게 융합해, 낯설지만 거부감 없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BTS 진’ 캐릭터 IP 스티커를 더한 것은, 음식을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팬덤 문화의 일부이자 소장 가치가 있는 ‘굿즈’로 격상시키는 영리한 한 수다.
이 혁신은 주방 안에서도 이어진다. 김밥을 ‘마는’ 기술은 의외로 숙련도가 필요하며,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재료를 순서대로 ‘쌓기만’ 하는 이 방식은 조리 과정을 극적으로 단순화한다. 이는 곧 조리 시간 단축, 인건비 절감, 어느 매장에서나 편차 없는 품질 유지로 이어진다. 가장 바쁜 시간에도 빠르고 일관된 서비스가 가능해져, 매장 회전율을 높이는 실질적인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고정관념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안하다
‘말지 않은 김밥’은 고급 레스토랑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해체주의(Deconstruction)’ 요리법을 가장 대중적인 음식에 접목한 사례이기도 하다. 익숙한 요소를 해체해 각각의 맛과 질감을 먼저 눈과 혀로 감상하게 한 뒤, 입안에서 스스로 조합해 완성하도록 이끄는 방식이다.
결국 이 작은 김밥 하나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운다. 진정한 혁신은 세상을 뒤엎는 거대 기술이 아닌, ‘왜 그래야만 하지?’라는 작은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것. 김밥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한 고정관념에 던진 이 유쾌한 반론이, 음식 산업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