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의 장사 인사이트] 이제 매운 맛은 끝났다

[김유진의 장사 인사이트] 이제 매운 맛은 끝났다

김유진 논설위원
작성일: 2025년 6월 30일
수정일: 2025년 6월 30일

당신 가게의 대표 메뉴는 무엇입니까? ‘불(火)’, ‘마왕’, ‘지옥’ 같은 단어를 붙여가며 캡사이신 소스를 들이붓고 있는, 그런 매운맛 메뉴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미 저물어가는 시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이제 매운맛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당신 가게의 대표 메뉴는 무엇입니까? ‘불(火)’, ‘마왕’, ‘지옥’ 같은 단어를 붙여가며 캡사이신 소스를 들이붓고 있는, 그런 매운맛 메뉴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미 저물어가는 시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이제 매운맛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왜냐고요? 한국 외식 시장에서 ‘매운맛’은 단순한 미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시대의 고통을 반영하는 ‘사회적 통각(痛覺)’이었습니다. 고객들이 매운 음식을 찾을 때는, 그들의 삶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매운맛은 시대의 비명이었다

역사를 보십시오. 온 국민이 숨죽여야 했던 유신정권 시절, 사람들은 무교동에 모여 매운 낙지볶음을 먹으며 울분을 삭였습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우리는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을 끓여 먹으며 땀과 눈물을 뺐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는 ‘매운 닭발’에 소주를 들이켰고, 진보와 보수가 극단으로 치닫고 탄핵과 촛불로 광장이 뜨거웠던 시기에는 ‘불닭볶음면’ 같은 극한의 매운맛 챌린지가 유행했습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매운맛은 ‘카타르시스’의 도구였습니다. 정치적 억압, 경제적 위기, 사회적 갈등 같은 거대한 스트레스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혀를 마비시키는 고통으로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는 것이었습니다. 매운맛은 일종의 자해(自害)이자 시대의 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끝났다는 말인가?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사라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스트레스의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거대한 담론과 집단적 울분은 옅어졌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개인의 안녕’, ‘나의 건강’, ‘취향의 존중’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가치들입니다.

고객들은 더 이상 고통으로 고통을 잊으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섬세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나’를 위로하고,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나’를 대접하길 원합니다.

증거를 보십시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재 입맛’이라 불리던 평양냉면이 왜 젊은 층의 ‘힙’한 음식이 되었을까요? 슴슴한 국물 맛의 본질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 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까? 자극적인 소스 대신 좋은 소금과 원재료 본연의 맛을 강조하는 식당에 왜 사람들이 줄을 섭니까?

이제 고객들은 혀를 마비시키는 자극이 아니라, 혀를 감동시키는 ‘본질’에 돈을 씁니다. 미각의 기준이 ‘고통’에서 ‘위로’와 ‘가치’로 완전히 이동한 것입니다.

사장님, 당신의 메뉴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아직도 ‘매운맛 1단계, 2단계, 3단계’ 같은 메뉴판을 자랑스럽게 걸어놓고 있습니까? 그건 2010년대의 유물입니다. 이제 고객들은 당신의 가게에서 스트레스를 ‘풀기’보다,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 소스를 버리고 재료를 보십시오. 당신이 쏟아붓는 캡사이신 소스는 좋은 재료의 맛을 가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뿐입니다. 그 소스 값으로 더 좋은 고기, 더 신선한 채소를 쓰십시오. 고객은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둘째, ‘강렬함’ 대신 ‘섬세함’에 집중하십시오. 매운맛의 단계가 아니라, 짠맛, 단맛, 감칠맛의 미묘한 균형을 잡으십시오. 식감의 조화, 그릇의 온도, 음식의 향기 같은 디테일이 새로운 경쟁력입니다.

셋째, ‘고통’의 스토리가 아닌 ‘정성’의 스토리를 파십시오. “우리 집은 지옥의 맛!”이라고 외치지 마십시오. 대신 “3일간 끓여낸 육수입니다”, “오늘 아침 통영에서 올라온 굴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이것이 지금 고객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입니다.

매운맛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시장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이 아닙니다. 일부 마니아를 위한 장르로 남을 뿐입니다.

자, 이제 선택하십시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본질’과 ‘가치’라는 새로운 파도에 올라탈 것입니까? 아니면 지나간 유행에 매달려 가라앉는 배와 운명을 함께할 것입니까? 당신의 메뉴판이 그 답을 보여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