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 매출 100억이 된 낡은 은행 이야기
‘맛’만으로 승부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고객은 지갑을 열기 전, 그곳에서 보낼 ‘시간의 가치’를 계산한다. 이 냉정한 현실 앞에서, ‘인테리어’는 더 이상 부가 서비스가 아닌,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경쟁력이다. 여기, 말레이시아 페낭의 한 폐건물이 어떻게 모두가 열광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는지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페닌슐라 하우스’의 이야기는 단순히 아름다운 공간을 넘어, ‘공간을 어떻게 돈으로 바꿀 것인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교과서다.
‘비어있음’의 미학: 제약을 기회로 바꾼 역발상

말레이시아 페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구의 심장부에 80여 년간 버티고 선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 ‘인디아 하우스’. 은행으로, 정보기관으로 쓰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이 공간의 운명은 레스토랑 ‘페닌슐라 하우스’로 재탄생하며 극적으로 바뀌었다.
리모델링을 맡은 디자인팀 ‘분더월’이 마주한 가장 큰 난제는 아이러니하게도 ‘텅 비어 있음’이었다. 화려한 외피와 달리, 내부는 기둥 하나 없이 휑한 거대한 공간. 보존할 만한 역사적 디테일조차 부족한 이 ‘제약’은 자칫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고수는 위기에서 기회를 읽는다. 디자인팀은 이 단점을 역으로 활용했다. 칸막이 없는 개방감을 원했던 오너의 요구와 높은 층고라는 건물의 특징을 결합, ‘벽 없는 분할’이라는 기막힌 해법을 찾아낸 것이다. 바닥에 높낮이를 달리하는 단(Platform)을 세워, 물리적인 벽 없이도 3개의 구역으로 공간을 자연스럽게 나눴다.

이 결정은 신의 한 수였다. 고객은 입구에서부터 바, 그리고 메인 다이닝 공간으로 이동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공간의 깊이와 풍경을 경험한다. 각기 다른 레벨은 저마다의 아늑함과 시야를 제공하며, 거대했던 공간은 지루할 틈 없이 흥미로운 무대로 변모했다. 이는 외식업 공간 설계의 본질을 관통한다. 공간 분할의 목적은 ‘구획’이 아니라, 고객의 ‘경험’을 설계하는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헤리티지’와 ‘디테일’: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만드는 법
오래된 건물을 개조할 때 가장 쉬운 유혹은 낡은 것을 모두 지워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페닌슐라 하우스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건물의 파사드(정면), 낡은 금속 창틀, 문고리 같은 디테일을 건물의 ‘영혼’으로 규정하고 이를 보존하는 데 집착했다.

푸른색이었던 낡은 유리는 질감이 느껴지는 유리로 교체해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고, 발코니에는 단열과 디자인을 모두 잡은 맞춤형 미닫이문을 설치했다. 이는 건물의 ‘나이’를 ‘역사’로, 즉 ‘헤리티지(Heritage)’로 승화시키는 전략이다. 누구나 복제할 수 있는 트렌디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이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구축한 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공간을 채우는 소재와 디테일에서 정점을 찍는다. 석회 페인트, 표백한 목재, 질감이 살아있는 돌과 금속, 그리고 맞춤 제작 가구와 빈티지 가구의 과감한 믹스매치. 이 모든 요소는 단순히 ‘보기 좋은 것’들의 나열이 아니다. 공간에 고유의 ‘서사(Narrative)’를 입히는 과정이다. 오래된 보석상을 개조해 만든 바 테이블, 지역 장인과 협업해 탄생시킨 조명과 촛대는 고객에게 “이곳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다.

재활용 목재로 만든 장엄한 출입구는 이 프로젝트의 상징과도 같다. 주어진 예산과 자재의 한계 속에서 디테일을 포기하지 않은 집념이 결국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결과물을 낳았다. 한계는 변명이 아니라, 창의성의 가장 강력한 기폭제임을 증명한 셈이다.
내 가게를 살리는 공간의 재해석: 5가지 핵심 질문
페낭의 이 성공 사례는 한국의 외식업 사장님들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맛의 상향 평준화 시대, 당신의 공간은 고객을 붙잡을 ‘결정적 무기’가 될 수 있는가? 다음 5가지 질문으로 당신의 공간을 재점검하라.
1. 당신의 공간은 죽어있는가, 살아있는가?
층고, 창문, 기둥, 낡은 벽돌… 당신이 무심코 지나쳤던 모든 요소에 잠재력이 숨어있다. 공간의 강점과 약점을 냉정히 분석하고, 약점마저도 어떻게 역이용할지 고민하라. 모든 공간에는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다.
2. ‘벽’ 없이 ‘경험’을 나누고 있는가?
답답한 파티션이 능사가 아니다. 가구 배치, 조명의 조도, 바닥재의 변화, 작은 단차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는 극적으로 바뀐다. 보이지 않는 벽으로 고객의 동선과 시선을 설계하라.
3. ‘트렌드’를 좇는가, ‘오리지널리티’를 만드는가?
유행은 짧고, 이야기는 길다. 당신 가게가 위치한 동네의 역사, 당신의 창업 스토리, 건물이 가진 고유의 특징을 공간에 녹여내라. 진정한 차별화는 당신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4. 당신의 가게는 ‘인증’하고 싶은 공간인가?
고객은 이제 음식이 아닌 ‘경험’을 찍어 올린다. 메뉴의 플레이팅부터 조명, 식기, 심지어 화장실 거울까지, 모든 디테일이 잠재적 마케팅 수단이다. 고객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당신의 공간을 다시 보라.
5. ‘돈’을 쓰는 인테리어인가, ‘돈’을 버는 인테리어인가?
지역의 목수, 철공소, 공방과 협업해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와 소품은 그 자체로 강력한 자산이 된다. 지역 자원과의 현명한 협업은 비용 절감을 넘어,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창출한다.
결론: 공간은 가장 정직한 투자다
페닌슐라 하우스의 성공은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공간은 더 이상 비용의 영역이 아니다. 고객을 불러 모으고, 머물게 하고, 다시 찾게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정직한 ‘투자’다. 당신의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고객이 마주하는 첫인상, 그 3초가 당신 사업의 미래를 결정할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의 공간을 다시 보라. 그 안에 잠들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깨울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