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나가던 술집이 '술'을 팔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외식 비즈니스의 미래를 읽고 시장을 선도하는 경영자 여러분을 위한 인사이트, 오늘 이야기의 문을 열겠습니다.
사장님, 만약 어느 날 갑자기 가게의 주력 메뉴, 예를 들어 평양냉면집에서 메밀을, 돈카츠집에서 돼지고기를 쓸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부분 눈앞이 캄캄해지실 겁니다. 그런데 여기, '술'을 팔 수 없게 된 '바(Bar)'가 있습니다. 이건 마치 권투 선수에게 한 팔을 쓰지 말고 싸우라는 것과 같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죠.

오늘의 주인공은 홍콩의 유명 바 '모스틀리 함리스(Mostly Harmless)'입니다. 각종 상을 휩쓸던 이 바는 최근 주류 판매 면허 갱신 문제라는 예기치 못한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선택은 폐업이나 메뉴 축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술을 일절 팔지 않겠습니다"라는 폭탄선언을 했죠.
이 무모해 보이는 결정, 과연 실패한 경영 판단일까요?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놀라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발견했습니다.

업의 본질을 재정의하라: "우리는 술이 아닌 '경험'을 판다"
많은 경영자분들이 위기 앞에서 '무엇을 포기해야 하나'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모스틀리 함리스의 오너 에즈라 스타(Ezra Star)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술'이 아니라 '손님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는 업의 본질이었습니다.
"바는 원래 술만 파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늘 '음료'와 '사람'이 있었죠. 우리는 술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을 상대해왔습니다. 그러니 알코올을 뺀다고 해서 우리의 본질이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 얼마나 자신감 넘치는 선언입니까. 이들은 자신들의 핵심 역량이 '주류 제조'가 아니라 '창의적인 음료 개발 능력'과 '환대(hospitality)'에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위기는 오히려 그 본질과 핵심 역량에 더 집중하게 만든 계기가 된 셈입니다.

'대체'가 아닌 '창조'로 경쟁의 룰을 바꾸다
자, 그렇다면 술 없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두 번째 인사이트가 나옵니다. 단순히 시중의 무알코올 맥주나 와인을 가져다 놓는 손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랬다면 그저 '구색 맞추기'에 그쳤을 겁니다.
이들은 아예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조했습니다. 바로 '요리로서의 무알코올 칵테일'입니다.
이들의 메뉴판에는 '무알코올 모히토' 같은 익숙한 이름이 없습니다. 대신 토마토를 발효시켜 베르무트의 쌉쌀함을 만들고, 감자 전분으로 위스키의 질감을 재현합니다. 한약방에서 볼 법한 인삼, 대추, 하고초 같은 재료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향과 맛의 '비터스(bitters)'를 직접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음료'가 아닙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셰프가 수많은 R&D를 거쳐 만들어낸 한 접시의 '요리'와 같습니다. 고객은 알코올이 빠진 가격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이 독창적인 '액체 요리'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게 됩니다. 경쟁자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강력한 기술적 해자(垓子)를 파고, 스스로 경쟁의 룰을 재정의한 것입니다.
미래 시장을 선점하는 감각: '소버 큐리어스' 트렌드를 읽다
이러한 혁신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명확한 미래 시장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즉 의식적으로 술을 멀리하는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술자리의 흥청거림보다 새로운 미식 경험 자체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모스틀리 함리스의 도전은 당장의 위기 극복을 넘어, 이 새로운 시장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겠다는 전략적 포석입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혹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에 갈 이유가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술 없이도 충분히 멋진 밤을 보낼 수 있다"는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한 것입니다. 이는 고객층의 외연을 폭발적으로 확장할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경영자 여러분, 모스틀리 함리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비즈니스는 지금 어떤 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그리고 그 위기 속에서, 당신이 파는 것은 제품입니까, 경험입니까? 당신의 핵심 역량은 무엇이며, 그것으로 어떤 새로운 판을 짤 수 있겠습니까?
위기는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의 비즈니스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 앞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담대한 리더십, 그것이 바로 시장을 이끄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