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레기로 지역을 살려낸 브랜드
90%. 버터 한 덩이를 만들기 위해 버려지거나 헐값에 팔려나가던 우유의 양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골칫덩이 '쓰레기'였을 이 숫자가, 어떻게 한 지역을 살리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기적의 레시피'가 되었을까요

한 조각에 담긴 90%의 이야기
바삭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와플 질감의 고프레(Gaufrette)를 한 입 베어 물면, 혀끝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밀크잼의 달콤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갑니다. 버터의 고소한 풍미가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그 안에 숨은 설탕 알갱이가 경쾌하게 씹히는 이 과자의 이름은 ‘버터의 사촌(バターのいとこ)’. 이름부터 정겨운 이 과자의 포장지에는 ‘04’와 ‘90’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숫자들이야말로, 이 과자가 품고 있는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신선한 생유(生乳)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고소한 버터가 되는 것은 고작 4%. 나머지 90%는 지방이 제거된 ‘탈지유’가 되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버려지기 일쑤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일본 유수의 낙농 지역인 나스(那須)의 한 낙농가, ‘신린노보쿠조(森林ノ牧場)’ 야마카와 씨의 깊은 한숨에서 시작됩니다. 숲에서 행복하게 자란 저지 소의 우유로 최고의 크래프트 버터를 만들고 싶었지만, 버터를 만들수록 산더미처럼 쌓이는 탈지유는 그의 발목을 잡는 아픈 손가락이었습니다. 90%를 버려야만 4%를 얻을 수 있는 구조. 이건 비즈니스를 넘어,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사람, 사람을 만나 희망을 굽다

음식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의 고민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만나 비로소 희망의 불씨를 지핍니다. 도쿄 출신으로 나스의 매력에 빠져 정착한 GOOD NEWS의 미야모토 대표는 야마카와 씨의 고민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보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스트레스 없이 자란 소의 탈지유는 그 자체로 훌륭한 맛을 지니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곧장 프랑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아시아인 최초의 셰프 파티시에로 활약한 친구, 고토 파티시에에게 달려갔습니다. ‘이 보물로 세상을 놀라게 할 과자를 만들어줘!’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버터의 사촌’입니다. 버터와 탈지유가 한 우유에서 태어난, 형제보다는 조금 멀지만 서로에게 꼭 필요한 ‘사촌’ 같은 관계라는 위트 있는 이름. 그리고 '04'와 '90'이라는 숫자를 새겨, 이 과자 한 조각을 사는 행위가 곧 버려지는 90%의 가치를 되살리는 일임을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알게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과자 판매가 아니라, ‘가치에 동참해달라’는 진심 어린 초대장이었습니다.

과자 공장이 아닌, ‘희망 제작소’
‘버터의 사촌’이 만들어낸 기적은 탈지유를 구한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기자로서의 오랜 경험을 걸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비즈니스는 언제나 ‘사람’을 향합니다.
수도권보다 인력난이 심각한 지방에서, 미야모토 대표는 과자를 ‘누가’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을 совершенно 다른 곳에서 찾았습니다. 그는 장애가 있거나, 아이를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처럼 ‘일하고 싶어도 포기해야 했던’ 이들에게 문을 열었습니다.
‘하루 4시간, 주 3일 근무, 1분 단위 급여 계산.’
누군가에게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이 시스템은, 그들에게는 세상 가장 유연하고 따뜻한 일터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움츠렸던 이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던 이들이 누구보다 성실한 장인이 되었고, 그들의 손끝에서 나스의 희망이 매일같이 구워졌습니다.
덕분에 ‘버터의 사촌’은 한때 주문 후 5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전설의 과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기꺼이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누군가의 삶을 일으키는 소중한 버팀목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조각의 과자가 일군 풍경

이제 ‘버터의 사촌’의 이야기는 나스를 넘어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탈지유뿐만 아니라, 치즈를 만들 때 버려지던 유청(ホエイ)으로 만든 ‘브라운 치즈 브라더’가 탄생했고, 홋카이도의 한 농부가 소중히 지켜온 토종 팥 ‘마코미메’가 ‘버터의 사촌’의 앙금으로 쓰이며 멸종 위기에서 벗어나 재배 면적을 100배나 넓혔습니다.
한 사람의 아픔에서 시작된 작은 아이디어가 낙농가를 살리고, 수백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사라질 뻔한 토종 작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음식은 누군가의 시간을 맛보는 것이라고 했던가요. 우리가 ‘버터의 사촌’ 한 조각을 맛볼 때, 우리는 단순히 달콤한 과자를 먹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숲속을 거닐던 소의 여유로움을, 90%의 탈지유를 보며 한숨짓던 농부의 밤을,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새로운 판을 짠 경영자의 혜안을,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희망을 굽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통째로 맛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깊고 진한 맛이 또 있을까요. 오늘, 당신의 식탁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