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을 집어삼킨 5,000원짜리 장어덮밥
특별한 날 먹던 장어덮밥을 5천 원에 판다면 어떨까?
일본의 ‘우나토토(宇名とと)’는 이 상식 밖의 도전으로 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단순히 ‘싸게 파는 가게’를 넘어, 팬데믹을 기회로 삼아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대형 프랜차이즈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대박 신화’가 아니다. 우나토토가 어떻게 장어를 ‘특별식’에서 ‘일상식’으로 끌어내렸는지, 그 치밀한 성공 설계도를 역추적한다.
일본 외식업계에 혁신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적으로 고급 요리로 여겨지던 장어덮밥을 500엔(약 4,500원)에 판매하며 급성장을 거듭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우나토토(うな東東)'다. 2020년 첫 매장을 연 이후 불과 4년 만에 전국 200여 개 매장을 돌파하며 일본 패스트푸드 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이 브랜드는 어떻게 '불가능'을 '필연'으로 바꿔놓았을까?
시장의 공백을 발견하다: 아무도 풀지 못한 숙제

우나토토 등장 이전, 일본의 장어덮밥 시장은 극명한 양극화 구조를 보였다. 한쪽에는 수십 년 경력의 장인이 정성껏 구워내는 고급 전문점들이, 다른 한쪽에는 저렴하지만 품질 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대형마트 제품들이 자리했다. 그 사이 거대한 공백이 존재했다.
문제는 접근성이었다. 직장인이 점심시간에 부담 없이 즐기기엔 너무 비쌌고, 1인 가구가 혼자 먹기에는 분위기나 양 모든 면에서 부담스러웠다. 모두가 '장어는 원래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누구도 이 가격의 장벽을 허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장에는 분명한 신호가 있었다. '합리적인 가격에, 괜찮은 품질의 장어덮밥을, 빠르고 간편하게' 먹고 싶은 대중의 숨겨진 욕구. 바로 이 지점에서 우나토토의 혁신이 시작됐다.
상식을 파괴한 해법: '장어의 맥도날드'를 만들다

우나토토의 접근법은 혁명적이었다. 그들은 '장어덮밥을 맥도날드처럼 만들자'는 대담한 발상에서 출발했다. 즉, '빠르고, 저렴하고, 맛있다'는 패스트푸드의 3대 원칙을 장어라는 전통 식재료에 그대로 이식한 것이다.
첫 번째 무기는 '카테고리 재정의'였다. 500엔짜리 '우나동'을 내놓으며, 스스로를 고급 식당이 아닌 한국의 '한솥도시락'이나 '김밥천국'과 같은 일상식 시장의 경쟁자로 포지셔닝했다. 이는 경쟁의 무대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블루오션 전략'이었다. 비싼 장어 전문점들과 품질로 정면승부하는 대신, 압도적인 가격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이다.
물론 가격만 싸다면 '싸구려'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우나토토는 이 함정을 피하기 위해 한 가지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참숯 직화구이'다. 마치 저가 커피 브랜드 '메가커피'가 '아라비카 100% 원두'를 고집하는 것처럼, 우나토토 역시 저렴한 가격 속에서도 '숯불 향'이라는 핵심 품질 가치를 지켜냈다.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가격에 숯불 향까지?"라는 놀라움이 입소문을 타며 확산됐고, 이는 단순한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를 충족시키는 결정적 차별화 요소가 되었다.
성공의 공식: 모방 불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다
파격적인 가격과 품질의 균형만으로는 우나토토의 성공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진짜 핵심은 이 모든 것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 '운영 시스템'에 있다.
생산 라인의 혁신
주방을 마치 자동차 공장의 생산 라인처럼 설계했다. '자르기, 굽기, 담기'라는 3단계로 조리 과정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고, 손질이 끝난 장어를 본사에서 일괄 공급받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덕분에 전문 주방장 없이도 아르바이트생만으로 매장 운영이 가능해졌다. 이는 인건비와 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며, 500엔이라는 파격적 가격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비용 구조를 완성했다.
공간 효율의 극대화

매장 공간 활용 역시 혁신적이다. 주문은 무인 키오스크가 받고, 좌석은 회전율이 빠른 1인용 카운터석 위주로 배치했다. 더 나아가 낮에는 덮밥집, 밤에는 간단한 안주와 주류를 파는 선술집으로 변신하는 '이모작(二毛作) 운영'을 통해, 한정된 공간에서 24시간 내내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을 구현했다.
위기를 기회로: 팬데믹 시대의 성장 동력
이처럼 잘 짜인 시스템은 코로나19라는 위기를 성장의 발판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배달 수요가 폭증하자, 우나토토는 즉시 한국의 '배민키친'이나 '위쿡'과 유사한 배달 전문 공유주방을 활용하거나, 기존 음식점의 남는 공간을 빌리는 '숍인숍' 형태의 라이선스 모델을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핵심은 표준화된 프로세스였다. 이미 모든 운영 과정이 체계화되어 있었기에, 최소한의 자본과 교육만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동일한 품질의 우나토토를 빠르게 복제할 수 있었다.
시사점: 시스템이 승부를 결정한다
우나토토의 성공은 '싸고 맛있는 장어덮밥'이라는 결과물이 아니라, '싸고 맛있는 장어덮밥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수익성 있게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했는가'라는 과정에 있다.
이들이 구축한 것은 완벽한 선순환 구조다. 운영 단순화가 저비용 구조를 만들고, 저비용 구조가 파괴적 가격을 가능케 하며, 이 가격이 새로운 시장을 열고, 다시 단순화된 운영 모델이 빠른 확장을 이끄는 구조 말이다. 경쟁자들은 500엔이라는 가격표는 모방할 수 있어도, 그 가격을 떠받치는 정교한 시스템의 유기적 힘까지는 쉽게 따라올 수 없다.
한국 소상공인들에게 던지는 질문
이 사례는 오늘날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는 한국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나의 사업은 단순한 '상품 판매'인가, 아니면 예측 가능하고 확장 가능한 '시스템'인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을 넘어, 주방의 동선, 인력 구조, 시간대별 공간 활용까지 모든 요소를 하나의 '성공 공식'으로 설계하고 있는가? 우나토토의 이야기는 결국, 거대 자본이 아닌 날카로운 아이디어와 치밀한 시스템 설계야말로 평범한 가게를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로 만드는 진정한 동력임을 증명하고 있다.
혁신은 기술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가장 전통적인 음식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