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횟감의 탄생, "옥수수 먹인 참돔"

글로벌 횟감의 탄생, "옥수수 먹인 참돔"

FBK Tokyo Desk
작성일: 2025년 7월 19일
수정일: 2025년 7월 19일

일본 에히메현의 한 양식장. 이곳에서 자라는 참돔은 다른 생선을 먹지 않는다. 대신 옥수수와 콩으로 만든 100% 식물성 사료를 먹는다. 상식을 뒤엎는 이 '채식주의 참돔'은 지난 3년간 매출을 2배, 순이익은 무려 12배나 끌어올리며 회사의 운명을 바꿨다. 고령화와 자원 고갈, 원가 폭등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던 일본 수산업의 위기 속에서, '상식 파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아카사카 수산(赤坂水産)의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독특한 양식법을 넘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을 보여준다.

위기의 본질을 파고든 '역발상'

세계 6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가진 일본이지만, 그 수산업은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어민의 고령화, 어획량 감소, 그리고 끝없이 치솟는 비용 구조가 산업 전체를 짓눌렀다. 특히 양식업의 경우, 전체 비용의 약 60%를 차지하는 '사료비'는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참돔 1kg을 키우기 위해 4kg의 멸치(정어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freepik의 Janwar Fajrin

2012년 가업에 합류한 아카사카 수산의 아카사카 류타로(赤坂竜太郎) 이사는 바로 이 '비용의 핵심'을 정조준했다. 수학과 금융업 경력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그는 문제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비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비용 구조 자체를 바꾸자"고 결심한 것이다. 그의 해답은 '무어분(無魚粉) 사료', 즉 생선 가루를 전혀 쓰지 않는 100% 식물성 사료였다.

이는 업계의 불문율을 깨는 시도였다. 생선이 식물성 사료를 좋아할 리 없다는 편견과 초기 생산성 저하라는 현실적 장벽에 부딪혔다. 주변의 평가는 냉혹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8년, 일본 정부가 70년 만에 어업법을 개정하며 '지속가능한 자원 이용'을 명시한 것은 그의 도전에 확신을 더했다. 그는 바다라는 공유 자산을 빌려 쓰는 사업자로서, 기존의 자원 소모적 모델을 버려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기술과 발상의 전환이 만든 '게임 체인저'

첫 번째 혁신: AI 기술과의 만남

'채식 참돔'의 가장 큰 난관은 낮은 먹이 반응이었다. 이론상 잡식성인 참돔은 식물성 사료를 먹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언제, 어떻게' 주느냐였다. 아카사카 이사는 수온, 급이 시간, 사료를 뿌리는 속도 등 수많은 변수를 조합하며 데이터를 쌓았다. 최적의 타이밍을 찾아냈지만, 40개에 달하는 가두리 양식장을 24시간 지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판한 것이 바로 AI 기술 스타트업, 한국의 '푸드테크' 기업과 유사한 우미트론(Umitron)이었다. 우미트론이 개발한 AI 스마트 급이기 '우미트론 셀(UMITRON CELL)'은 24시간 내내 어류의 움직임을 감지해 최적의 순간에 사료를 자동으로 공급했다. 2020년, 아카사카 수산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조달, 이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했다. 인간의 한계를 기술로 극복한 이 결정은 '채식 참돔'의 상업화를 가능케 한 결정적 한 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비쌌던 식물성 사료는 2022~2024년 사이 최대 7배까지 폭등한 멸치 가격 덕분에 이제는 오히려 더 저렴한 선택지가 되었다.

두 번째 혁신: '숙성'에서 찾은 새로운 가치

기술로 생산 문제를 해결했지만, 또 다른 장벽이 나타났다. 무어분 사료로 자란 참돔 '하쿠쥬마다이 제로(白寿真鯛0)'는 비린내가 거의 없어 깔끔했지만, 한국과 일본의 미식가들이 선호하는 '활어회' 특유의 쫄깃한 식감과 감칠맛은 부족했다. 이는 국내 시장에서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었다.

아카사카 이사는 이 약점에서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발견했다. 비린내가 없다는 것은 '숙성'에 최적화된 조건임을 의미했다. 마치 한국의 '숙성회' 개념처럼, 생선을 저온에서 일정 기간 숙성시키면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며 감칠맛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비린내가 없는 하쿠쥬마다이 제로는 시간이 지나도 잡내가 없고 투명함을 유지해 숙성 재료로 완벽했다.

이 '숙성'이라는 가치는 특히 해외 시장에서 빛을 발했다. 신선한 활어회의 쫄깃한 식감을 '질기다(chewy)'며 부담스러워하는 외국인들에게,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감칠맛을 내는 숙성 참돔은 완벽한 대안이었다. 일본에서 미국 레스토랑까지 운송에 꼬박 5일이 걸리는데, 이 시간이 바로 하쿠쥬마다이 제로의 '최적 숙성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생선을 수출한 것이 아니라, '숙성될 시간'이라는 가치를 함께 수출한 셈이다.

feepik의 Addictive Stock

미래 비즈니스 환경에 던지는 파장

아카사카 수산의 사례는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공 신화를 넘어, 한국의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마주할 수 있는 미래 시장의 변화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는 확정된 미래가 아닌, 현재의 사실들이 가리키는 몇 가지 중요한 방향성에 대한 분석이다.

1. 가치 사슬(Value Chain) 경쟁의 본격화 가능성

아카사카 수산의 핵심 성공 요인은 '원가 절감'이 아니라, 사료-생산-가공-유통으로 이어지는 '가치 사슬 전체의 재설계'에 있었다. 이는 전통적인 경쟁 방식에 변화의 조짐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이 기존의 공급망 안에서 더 저렴한 재료를 찾는 데 집중했다면, 아카사카 수산은 공급망의 출발점인 '사료'의 개념 자체를 바꿨다. 이처럼 생산 구조 자체를 혁신하는 시도가 새로운 경쟁의 축이 될 수 있다. 기존 방식에 머물러 있는 기업은, 이처럼 가치 사슬 전체를 최적화한 새로운 모델의 등장으로 인해 비용 및 가치 경쟁력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2. '틈새 시장'의 재발견과 표준의 다변화

'쫄깃한 활어회가 최고'라는 일본 내 확고한 표준에 도전하며 '부드러운 숙성회'라는 새로운 가치를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하나의 지배적인 표준이 아닌,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틈새 시장'의 중요성이 부각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시장의 주류에서 벗어난 특성이 약점으로 간주되곤 했다. 그러나 아카사카 수산의 사례는, 특정 고객층에게는 그 약점이 오히려 독점적인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러한 현상은 소비자의 취향이 점점 더 세분화되는 시장 환경 속에서, '나만의 기준'을 가진 고객을 공략하는 전략이 의외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3. 기술 융합과 산업 경계의 재정의

전통 수산업체가 AI 기술 스타트업과 손을 잡고 생산성의 한계를 돌파한 것은, 산업 간 경계가 점차 흐릿해지는 현상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카사카 수산은 스스로 AI 전문가가 되려 하지 않고, 최고의 기술 파트너를 찾아 협력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의 성공은 자사가 속한 산업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외부 기술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결합하는지가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가늠하는 핵심 변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이종 산업의 기술을 탐색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기업의 핵심 역량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