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1℃ 오르면, 내 지갑은 얇아진다? - 폭염과 물가의 위험한 동행

기온이 1℃ 오르면, 내 지갑은 얇아진다? - 폭염과 물가의 위험한 동행

김유진 논설위원
작성일: 2025년 7월 7일
수정일: 2025년 7월 7일

숨이 턱 막히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 우리는 에어컨 리모컨을 찾기 전에 다른 것을 먼저 확인하곤 합니다.

바로 마트 전단지 속 상추 한 포기, 사과 한 알의 가격입니다. 이상하게도 기온이 맹렬히 치솟는 날이면 장바구니 물가도 덩달아 가파르게 오르는 것을 체감합니다.

정말 날씨와 내 지갑 사정은 연결되어 있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입니다. 이제 온도계의 눈금은 단순한 날씨 정보가 아닌, 우리 지갑의 두께를 결정하는 중요한 경제 지표가 되었습니다.

과학이 증명하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

‘기온이 1도 오르면 물가도 오른다’는 말은 더 이상 농담이나 과장이 아닙니다. 과학적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충격적인 공동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구 평균 기온이 1℃ 상승할 때마다 전세계 식품 물가가 연간 최대 3.2%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전세계 121개국의 30년간 월별 물가 데이터와 기상 데이터를 분석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처럼 기후 변화(Climate)가 인플레이션(Inflation)을 유발하는 현상을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고 부릅니다.

과거에는 석유 파동 같은 특정 이벤트가 물가 상승의 주범이었다면, 이제는 우리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태양과 변덕스러운 비가 새로운 복병으로 등장한 셈입니다.

폭염과 장마, 물가 상승의 ‘쌍끌이 주범’

기후플레이션의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폭염과 장마(집중호우)가 농산물 가격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1. 폭염: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볕더위

강렬한 햇볕과 높은 기온은 식물의 ‘광합성’ 효율을 떨어뜨리고, 수분 스트레스를 극대화합니다.

잎은 타들어가고 열매는 제대로 크지 못하며, 심하면 말라 죽습니다. 특히 상추, 시금치 같은 잎채소는 폭염에 매우 취약해 생산량이 급감하고, 이는 즉시 가격 폭등으로 이어집니다.

축산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더위에 지친 닭은 알을 덜 낳고(산란율 저하), 젖소는 우유 생산량이 줄어듭니다. 이는 계란과 유제품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됩니다.

2. 장마: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물 폭탄

반대로 장마나 집중호우가 길어져도 상황은 악화됩니다. 강한 비는 꽃과 열매를 떨어뜨려 수확량을 감소시키고, 밭이 물에 잠기면(침수) 뿌리가 썩어 식물 전체가 고사합니다.

높은 습도는 탄저병과 같은 병충해를 확산시키는 최적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결국 살아남은 농산물은 희소해지고, 그 가치는 천정부지로 솟구칩니다.

결국 폭염과 장마라는 극단적 날씨는 생산량 감소 → 공급 부족 → 원재료 가격 상승 → 최종 소비자가격 인상이라는 공식을 충실히 따르며 우리의 밥상 물가를 위협합니다.

기후 변화에 웃고 우는 자영업자들의 희비쌍곡선

이러한 물가 변동은 자영업, 특히 특정 업종에 직격탄을 날립니다.

외식업: 식재료 가격이 급등하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곳입니다. 김치찌개 식당은 배추와 고춧가루 가격에, 파스타 가게는 토마토와 채소 가격에 따라 수익성이 널을 뜁니다. 원가 부담을 견디다 못해 메뉴 가격을 올리자니 손님의 발길이 끊길까 두렵고, 가격을 유지하자니 파는 만큼 손해를 보는 ‘자영업자의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기후 리스크’가 곧 ‘경영 리스크’가 되는 것입니다.

숙박업 & 여행업: 이들 업종은 날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립니다. 폭염이 계속되면 계곡, 해수욕장 인근의 야외 활동 중심 숙소나 여행 상품은 예약 취소가 빗발칠 수 있습니다. 반면, 시원한 실내에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호캉스(호텔+바캉스)’ 상품이나 도심의 쇼핑몰과 연결된 호텔은 때아닌 특수를 누립니다. 여행의 트렌드 자체가 ‘야외 체험’에서 ‘실내 피서’로 바뀌는 것입니다.

뷰티업 & 패션업: 날씨는 소비자의 필요를 직접적으로 자극합니다. 폭염이 길어질수록 자외선 차단제, 애프터 선케어, 쿨링 효과가 있는 화장품 판매는 급증합니다. 반면 두꺼운 메이크업 제품은 외면받습니다. 패션업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라는 말이 무색하게 겨울은 짧아지고 여름은 길어지면서, 통기성 좋은 린넨 소재나 냉감 기능성 의류의 생산과 판매 기간이 늘어납니다. 반대로 두꺼운 겨울 외투의 재고 부담은 커지는 등 계절의 경계가 무너지며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온도계는 이미 경고등을 켰다

이제 우리는 날씨 예보를 보며 단순히 우산을 챙길지, 반팔을 입을지만 고민해서는 안 됩니다. 온도계의 1도 상승이 내 식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이고, 단골 식당의 메뉴판 가격을 바꾸며, 내 휴가 계획까지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북극곰의 눈물이나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우리 지갑을 위협하는 현실적인 ‘경제 문제’입니다. 스마트팜, 신품종 개발 등 기술적 대응과 함께 기후 변화 자체를 늦추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오늘이 가장 싼 가격’이라는 씁쓸한 말이 매년 여름 되풀이될지도 모릅니다. 온도계가 보내는 빨간불 경고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하느냐에 우리의 경제적 안위가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