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백질을 면에 넣다: 태국 베타그로가 한 끼를 숫자로 바꾼 전략
태국 식품기업 베타그로가 닭고기로 만든 면을 선보였다. 제품 100g당 단백질 13g, 닭가슴살 100g을 곁들이면 한 끼 약 33g이라는 설명으로 영양을 눈에 보이는 숫자로 바꿨다.
태국의 한 식품회사가 닭가슴살을 갈아 면을 뽑았다. 밀가루는 한 톨도 안 썼다. 면 한 그릇으로 단백질 13그램, 여기에 닭가슴살 요리를 곁들이면 한 끼 33그램. 태국 식품기업 베타그로(Betagro)가 내놓은 '치킨 누들'이 노린 건 새로운 식감이 아니다. 손님이 한 끼에서 받는 단백질을 눈에 보이는 숫자로 바꾼 것이다.
고단백 시장의 승부처가 옮겨가고 있다. 단백질 음료와 단백질 바가 매대를 채우는 동안 밥과 면 같은 주식은 '단백질을 곁들이는 받침' 자리에 머물렀다. 베타그로는 그 받침을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전략의 뼈대는 단순하다. 단백질을 사이드가 아니라 주식 그 자체에 심고 그 양을 숫자로 못 박는다.
한 끼에 단백질 33그램을 눈으로 보여준다
계산은 이렇다. 그린커리 닭요리에 이 면을 말면 면에서 단백질 13그램이 나온다. 곁들인 닭가슴살 100그램이 20그램을 더한다. 합치면 한 끼 약 33그램이다. 베타그로의 무역 마케팅 총괄은 소비자가 평범한 한 끼에서 단백질을 두 배로 손쉽게 챙기게 만드는 것이 이 제품의 출발이었다고 말한다.

핵심은 '두 배'라는 막연한 약속이 아니다. 33이라는 숫자다. 손님은 건강에 좋다는 말에는 무뎌졌지만 그램으로 적힌 양 앞에서는 눈을 멈춘다. 베타그로가 판 건 면이 아니라 그 숫자다.
닭가슴살을 밀가루 대신 면으로 뽑았다
만드는 방식은 일반 면과 똑같다. 밀가루 반죽을 압출기로 밀어 뽑듯 닭가슴살을 같은 공정으로 면 모양으로 성형한다. 다른 건 재료뿐이다. 밀가루나 전분 대신 닭가슴살이 면의 몸통이 된다. 이 제품은 올해 태국 식품박람회(THAIFEX-Anuga Asia 2026)의 혁신상품 톱10에 뽑혔다.

면이 곧 단백질 덩어리가 되니 그릇의 구조가 뒤집힌다. 예전 같으면 면은 탄수화물이고 그 위에 올린 고기가 단백질이었다. 여기서는 면부터 단백질이다. 위에 닭가슴살을 더 얹으면 단백질이 두 겹으로 쌓인다.
음료와 스낵을 지나 밥과 면으로 간 단백질
지난 몇 해 단백질은 기능성 식품 개발의 주연이었다. 단백질 음료가 편의점 매대를 장악하고 단백질 과자가 그 옆에 붙었다. 밥과 면은 빠져 있었다. 아시아에서 주식은 오래도록 '단백질을 얹는 바닥' 취급을 받았다.
베타그로는 바로 그 빈자리를 봤다. 소비자가 먹던 대로 면을 먹으면서 단백질만 더 챙기게 하면 식습관을 바꾸라고 설득할 일이 없다. 면을 그릇으로 고른 이유도 여기 있다. 면은 아시아든 서구든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익숙한 그릇에 낯선 제안을 담으면 손님의 첫 거부감이 낮아진다.
싱가포르를 먼저 노리고 미국을 미룬 이유
첫 수출 목표는 싱가포르와 홍콩 필리핀이다. 면 문화가 두텁고 소매 진입이 빠른 시장이다. 유럽도 검토 대상에 올렸다. 정작 단백질 수요가 가장 큰 미국은 뒤로 미뤘다. 닭고기 수입을 둘러싼 검역과 규제 문턱이 높아서다.
회사의 본업은 원래 가금이었다. 베타그로 설명에 따르면 일본과 유럽 등 20여 개 시장에 가금을 공급해왔다. 그 회사가 이제 종합식품으로 방향을 튼다. 김밥 같은 간편식과 바나나 튀김 디저트, 냉동식품까지 라인을 넓히는 중이다. 닭가슴살 면은 '가금 회사'라는 꼬리표를 떼는 상징인 셈이다.
물론 닭고기를 주재료로 쓰는 면은 원가와 보관 조건, 생산 확장 방식이 일반 면과 다르다. 대중적인 규모로 자리 잡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발상이 옳다는 것과 매대에서 팔린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메뉴판에 단백질을 숫자로 적어라
한국 사장에게 이 사례의 쓸모는 닭가슴살 면을 똑같이 만들라는 게 아니다. 단백질을 보이게 하라는 것이다. 헬스장 근처 국숫집이든 분식집이든 단백질을 찾는 손님은 이미 가게 안에 있다. 그들이 알고 싶은 건 '건강한 메뉴'라는 말이 아니라 이 한 그릇에 단백질이 몇 그램이냐다.

닭가슴살을 올린 비빔국수, 두부면을 쓴 잔치국수, 달걀을 두 알 넣은 라면. 이미 팔고 있는 메뉴의 단백질을 계산해 그 숫자를 메뉴판에 적어보라. 곤약면이나 두부면처럼 면 자체를 바꾸는 시도도 같은 선에 있다. 단백질은 느낌이 아니라 숫자로 팔린다.
내일 메뉴판에서 단백질이 가장 많은 한 줄을 골라 그램 수를 붙여보라. 손님이 그 줄을 짚는 손가락이 달라진다.